brunch

장난감 코너에서 울컥하다

by 지뉴

함께 근무했던 동료 직원에게서 오래간만에 카톡이 날아들었다.

새해맞이 안부인사이겠거니, 생각하며 대화창을 열었다.

대화창에는 짧지 않은 동영상 하나가 '지금 우리 집 상황...'이라는 문구와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동영상을 재생시키니 동료의 다섯 살 된 아들이 우리말인지 영어인지 알아듣기 힘든 노랫말을 신명 나게 흥얼거리며 동료의 책상에 앉아 신나게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나타났다.



'너무 귀엽다!'라고 답톡을 보냈다. 그 순간 가슴 한편이 구멍이라도 난 듯 허전해져 왔다.

'이 느낌은 무얼까?’ 순간 나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이 일어 어리둥절해졌다.

감정의 실체를 깨닫게 된 건 저녁나절 들렀던 대형마트의 장난감 코너에서였다.



평소에는 마트에서 식료품등의 먹거리들이 있는 지하 1층에서 주로 장을 보고 장난감 코너가 있는 1층은 들르지 않는다. 그런데 어항에 넣을 수초가 필요했던 이날은 1층을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알록달록한 수초 하나를 고른 후 지하 1층으로 내려가려는데 왠지 형형색색의 장난감들로 가득한 뒤편선반들이 내 발걸음을 잡아끌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요즘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지.

그러고 보니 장난감 코너 앞을 서성이지 않은지 꽤 오랜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카트를 구석에 세워두고 찬찬히 장난감들을 살펴보았다. 의외로 우리 아이들이 한창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몇 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콩**’인형 시리즈부터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터닝 메**’ 시리즈, ‘로보카 폴*’, ‘꼬마버스 타*’를 비롯한 각종 애니메이션 캐릭터 장난감까지. 성큼 커버린 우리 아이들과 달리 그 시절을 풍미했던 장난감들은 포장만 바꾼 채로 여전히 건재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첫째와 둘째 모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트에 함께 갈 때면 필수적으로 장난감 코너에 들러 온갖 최신 유행 장난감들을 섭렵하던 아이들이었다.

한 달에 십만 원도 더 들곤 했던 장난감 구입비에 가슴 졸이던 나는, 아이들과 마트에 갈 때면 어떻게 장난감 코너를 무사히 지나쳐갈 수 있을까 궁리하기 바빴지만 내 바람이 성사되기엔 장난감에 대한 아이들의 애정이 너무도 깊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장난감 코너 이곳저곳을 마치 보물섬이라도 되는 양 탐험하고 다니던 아이들의 눈과 손이 제발 값비싼 장난감 위로 안착하지 않기를, 그래서 엄마와 피곤한 실랑이를 벌이게 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애원하며 아이들의 뒷모습을 피곤한 눈으로 분주하게 좇으며 서 있곤 했다.



그랬던 아이들은 이제 장난감 코너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어쩌다 함께 간 마트에서 ‘구*플레이 기프트 카드’ 주변을 기웃거릴 뿐이다. 친구들과 함께 팽이를 돌리고 비눗방울을 날리며 놀이터를 누볐던 시절을 '철없던 아기 시절'로 치부하며.

10대에 접어든 아이들은 방구석에서 랜선 친구들과 게임을 하며 가상의 놀이공간에 붙박여 있기를 더 좋아한다. 그리고 이것이 자신들의 '진정한 놀이'라고 주장한다.



엄마와 함께 마트에 오는 것을 귀찮아하는 아이들을 집에 남겨 두고 온 지금의 나는, 홀로 멈춰 선 마트 한 구석 장난감 코너에서 장난감들을 세심히 살피다 코끝이 찡해져 왔다.

이젠 더 이상 장난감 코너를 피할 이유가 없어진 나는 내 발로 찾아간 마트 한 귀퉁이에서, 떼쓰는 아이 하나 없이 너무도 고요하게 선 채로 울컥했다. 힘들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장난감 코너에서 겪었던 상황들을 그리워하며. 엄마에게 매달려 고집을 피우고 애 태우던 아이들의 모습을 형형하게 떠올리며.


그제야 비로소 나는 알 수 있었다. 동료의 카톡에 불현듯 마음이 헛헛해져 온 까닭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