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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Feb 16. 2023

엄마가 길을 가다 넘어졌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해묵은 다짐

상처에 바르는 약 어디 있노?


방문을 불쑥 열고 들어오며 엄마가 내게 물었다.


"왜, 어디 긁히기라도 한 거야?"


내 말에 엄마는 쭈뼛쭈뼛 손으로 빨갛게 부어오른 얼굴 한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오다가 요~기 앞에서 넘어졌다."


엄마의 얼굴을 보는데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얼마 전 들었던 큰 이모의 소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 달 전쯤 홀로 집에 있던 큰 이모는 바지를 갈아입다 별안간 다리에 힘이 삐져 무게중심을 잃고 넘어졌고, 엉덩이 뼈를 다쳐 그 길로 장기간 병원에 입원 중이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먼 친척 아저씨 한 분도 침대에서 내려오다 넘어지는 사고를 당한 뒤 오랜 기간 병석에 있다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넘어진다'는 그리 드물지 않은 동작이 70대가 넘어가는 어르신들에게는 생을 달리하게 만드는 '큰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됐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든 발을 헛디뎌 자빠지든 젊은이들이야 그저 손 ‘탁탁’ 털고 일어나 다시 가던 길을 가면 되는 별것 아닌, 그저 약간의 창피함만 동반될 뿐인 일이지만.



엄마의 말에 따르면 상황은 이랬다.

엄마는 오래간만에 근처 가게에서 물건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평소처럼 느린 걸음으로.

그런데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을 무렵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앞으로 기울어지며 바닥으로 쿵, 하고 넘어졌단다.

때마침 옆에 지나가고 있던 젊은 남녀 한쌍이 엄마를 발견했고,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구급차를 부르겠다며 나서는 걸 '괜찮다'며 말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젊은이들이 참 고맙더라며 감탄 섞인 칭찬을 했다.

나는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은 길에서 혹여 미끄러진 게 아니냐고 재차 물었다. 엄마는 그런 건 아니라며, 희한하게도 저절로 몸이 앞으로 힘없이 쏠리면서 별 이유도 없이 급작스럽게 넘어졌는데 그 찰나의 상황이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순간 걱정 어린 말에 앞서 나도 모르게 버럭, 잔소리가 튀어나와 버렸다.


"그러게 내가 뭐라 그랬어? 평소에 누워있지만 말고, 산책도 종종 하고, 몸을 계속 움직이라고 했잖아! 몸에 근육이라고는 없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엄마의 일상은 거의 앉아있거나 누운 채로 흘러간다. 내 기억상으로 평생을 걸쳐 엄마가 활동적으로 돌아다닌다던가 잠시라도 운동이란 걸 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없다. 젊었던 시절에도 말이다.

엄마는 폭압적 아빠를 견뎌내며 직장생활과 살림을 병행하고 자식을 길러내는 데 온몸의 에너지를 고갈시켰다.

젊었을 때는 '젊음' 그 자체가 엄마의 몸을 지탱해 줬지만, 노년기에 들어서자 그나마 버티고 있던 근육마저 사라지고 세월에 닳고 닳은 애달픈 살만이 겨우 살아남은 몸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척추를 꼿꼿이 지탱하지 못하는 등은 조금씩 앞으로 굽었다. 길을 가다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져버린 이유일 테다.



아직 내게는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이 머릿속에 선연하게 남아 있건만 이제 엄마 혼자서 길을 걷는 상황조차 안심할 수 없겠다는 사실에, 어쩌면 엄마에게는 홀로 거리를 나서는 것조차 일상이 아닌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속이 너무 상했다.

그럼에도 속상한 마음은 뾰족한 말이 되어 엄마에게로 향했다.


"... 제발 억지로라도 좀 걸어 다녀. 누워 있지만 말고! 안 그럼 계속 잔소리할 거니까!!”


상처 난 엄마의 얼굴에 바를 마데**을 애타게 찾으며 입으로는 연신 잔소리를 쏟아냈다. 그러다 결국엔 미래의 나 자신을 위해 또다시 해묵은 다짐을 했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꾸준히 운동하는, 활동적이고 건강한 할머니가 되겠다고. 결코 딸을 불안하게 만드는 늙은 엄마가 되지는 않겠다고.

‘다친 엄마에게 왜 이렇게밖에 못할까’ 스스로를 자책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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