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했더니 사무실 책상 위에 웬 꽃무늬 양산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양산을 써 본일도 거의 없지만, 흡사 90년대를 연상시키는 꽃무늬라니… 누가 실수로 잘못 올려둔 것인가 아니면 잊을만하면 날아드는, 그렇지만 흔하지 않은 유형의 '답례품'인 것인가, 의구심을 품고 있던 찰나, 먼저 출근한 같은 팀 동료와 시선이 마주쳤다.
"이거 뭐야?" 나는 손으로 양산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팀장님이 주는 선물." 동료의 대답이었다.
팀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선물이라... 평소의 팀장을 돌이켜봤을 때 분명 저 양산 뒤에 숨겨진 의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양산이 품고 있던 '저의'는 팀장이 자리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양산은 '폭염주의보'속 직원들의 식후 산책을 독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내리쬐는 여름햇살 아래서 양산이라는 얇은 방어막 하나 없이 점심시간 산책을 하는 팀 직원들의 건강을 염려한, 팀장의 배려가 녹아있는 선물이었다. 물론 양산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더 낫긴 할 테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살짝 고맙기도 한 배려였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 생각해 보면 그 배려는 결국 팀장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다.
구체적 내용은 이러했다.
병원 건강검진 후 결과가 썩 좋지 않았는지 '하루에 만보'이상 걷기를 실천 규칙으로 정한 팀장은, 점심식사를 마친 후 홀로(혹은 옆팀 팀장과) 회사 근처 공원 주변을 산책했다. 좋은 일이었다. 본인을 위해서도 팀원인 우리들을 위해서도. 팀장은 본인의 건강을 도모하고 우리는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끼며 자유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팀장이, 홀로 가기가 적적했는지, 팀원들도 함께 산책하기를 은근히 종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앉아만 있는 대신 함께 산책을 하면 다 같이 건강해지지 않겠냐며. 얼마 되지 않는 식후 휴식시간마저 저당 잡히게 된 우리들은 주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에게 따라붙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권유라기보다는 지시에 가까운 종용이었기 때문이다. 팀장 말처럼 신체적으로는 좀 더 튼튼해졌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었다. 결코 말이 적지 않은 팀장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에 걸맞은 적절한 리액션을 하고 보조를 맞춰주며 남은 점심시간을 신경이 곤두선 채 보내고 나면 가뜩이나 피곤한 오후가 더 힘겹게 느껴졌다.
팀원들은 지쳐갔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돌아가며 산책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소한 핑계를 반복하기엔 눈치가 보였다. ‘절대적 변명거리’가 필요했다. 그러다 여름이 되었고, 우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폭염주의보'라는 호기(?)를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작열하는 태양아래서 하는 산책은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고 팀장의 식후 산책도 잠시 주춤해지는가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팀장의 꽃무늬 양산이 등장한 것이다. 팀원들이, 들끓는 날씨가 준 휴식에 흡족해하고 있던 사이 팀장은 해결책을 고심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식후의 고단한 산책은 꽃무늬 양산과 함께 재개되었고 우리는 또 다른 그럴싸한 변명거리를 찾아내야 하는 난관에 부딪혔다. 이번에는 우리가 고심할 차례였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선물로 받은 양산을 무용하게 만들 정도로 납득할만한 생각을 떠올리기가. 결국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신, 무난한 회사 생활을 위해 ‘정신 승리의 길’로 가기로 했다.
점심시간 뒷산을 오르는 건너편 팀을 보며, 우리 팀장보다 몇 배는 더 말이 많아 보이는 팀장과 하루에도 몇 번씩 커피타임을 갖는 옆팀 직원들의 뒤끝 씁쓸한 미소를 목격하며 그래도 우리는 나은 편이 아닌가, 위안 삼았다.
가늘고 긴 직장 생활을 위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쭙잖은 비교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어쨌든 우리 몸에 좋은 일을 하는 거잖아’라는 정신 승리적 결론에 도달했다. 직장 생활의 비루함에 공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