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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Mar 31. 2023

어느 평범한 집 첫째 딸

엄마가 사라졌다. 내가 잠든 사이에.

휴일 아침이었다. 엄마 방의 물건들은 그대로였다. 지갑, 옷, 가방, 심지어 핸드폰마저도. 어쩌면 숨겨진 깊숙한 곳 어딘가에 있었던 엄마의 물건이 사라졌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겉으로 봐서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이상하리만치 엄마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핸드폰도 방에 둔 채로. 여태껏 엄마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엄마를 마지막으로 봤던 어젯밤에 무언가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머릿속을 곰곰이 되감아봤다.



아마도 자정 무렵이었을 거다. 엄마는 부엌 식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지 내가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바깥에는 소리 없이 싸락눈이 내렸고 식탁 위에 놓인 엄마의 핸드폰에서는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엄마가 젊은 시절 좋아했다던 어느 가수의 노래였다. 내가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그러니까 외할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기 전부터 나는 그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생전의 할머니도 가장 좋아했던 가수라고 했다. 어젯밤 따라 노래는 구슬펐고 엄마의 표정은 쓸쓸했다. 낯선 모습이었다. 밤이 깊은 시간에 엄마가 음악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문득 엄마의 핸드폰에 갑작스러운 엄마의 부재에 관한 실마리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내겐 엄마 핸드폰의 비밀번호에 관한 그 어떤 정보도 없었다. 엄마 핸드폰의 창의 잠금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생각나는 숫자들을 마구잡이로 눌러보았지만, 닫힌 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싱가포르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하려다 국제전화비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일이 생각나 그냥 카톡을 날렸다.


 - 엄마가 사라졌어. 물건은 다 그대로 있는데. 너 혹시 짐작 가는 곳 없어?


동생에게선 답이 없었다. 나는 엄마의 핸드폰 잠금화면을 유심히 살폈다. 좀 전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곳엔 한 겹 안개가 낀 듯 희끄무레한 사진이 걸려 있었다. 봉긋하게 솟아있는 모습이 흡사 젊은 여자의 새하얀 젖무덤 같기도, 어찌 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말캉말캉한 푸딩처럼 보이기도, 어느 순간엔 어디선가 본 듯한 무덤 하나를 떠올리게도 하는 사진이. 나는 사진을 찍어 동생에게 전송했다.


 - 엄마 핸드폰 바탕화면인데, 네가 보기엔 이게 무슨 사진 같아??


이번에도, 동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다시 최근 엄마의 말이나 행동에서 수상한 점은 없었는지 돌이켜봤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요즘 매일같이 내게 '오늘이 며칠'인지 혹은 '무슨 요일'인지를 물었었다. 마치 특정한 어떤 날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나는 달력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4월 20일 토요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공기가 따스했다. 베란다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봄기운이 가득해 보였다. 불현듯 어젯밤에 가늘게 흩날렸던 눈이 떠올랐다. 밤사이 계절이 바뀐 것만 같았다. 순식간에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불안감이 끓어올랐다. '실종 신고라도 해야 하나?' 그렇지만 엄마가 사라지고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엄마는 잠시 집을 비운 것뿐이라고 그들은 말할지 모른다. 신고를 하더라도 성인의 경우엔 '실종'이 아닌 ‘단순 가출'로 접수된다고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갈수록 엄마가 '사라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집에서 가만히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집을 나선 나는 내가 가진 지식을 총 동원해 엄마가 갈 만한 곳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엄마의 유일한 친구인 금희 아줌마네, 집 근처 마트, 그리고 할머니가 계신 곳. 그 순간, 60년을 넘게 이 세상을 살아온 엄마가 갈 곳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장소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금희 아줌마의 집은 어디인지 모른다. 시내 가까운 곳이라는 것 밖에. 핸드폰 번호도, 내게는 없다. 잠겨 있는 엄마의 핸드폰 안에 들어있을 거다. 엄마가 밤사이 마트를 갔을 리는 만무하고. 할머니는, 할머니의 산소는... 아! 그때 떠올랐다. 엄마 핸드폰 바탕화면에 걸려있던 사진이. 어젯밤 엄마가 듣고 있던 그 노래가. 생각해 보니 엄마는 요즘 할머니가 자꾸 꿈속에 나타난다고 했었다. 엄마 꿈속에 말없이 등장하는 할머니가, 할머니가 내려다보고 있을 그 바다가 보고 싶다고도. 나는 할머니가 있는 해천으로 가기 위해 무작정 터미널로 향했다.



할머니의 산소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해를 향해 활짝 열려있지만, 땅으로부터는 숨어 있어 찾아가기 쉽지 않은 그런 곳에. 엄마와 여러 번 가지 않았더라면 홀로 그곳에 갈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다. 늘 엄마와 함께 가던 길을 혼자 가려니 가는 내내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엄마가 그리웠다. 하루 전 내 눈앞에 있었던 엄마가.

나는 할머니가 생전에 좋아했던 막걸리와 풋사과를 사들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동생에게선 아직도 답이 없었다. 오늘 저녁까지 답이 없으면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산을 오르는 길, 어젯밤의 싸락눈이 무색할 정도로 봄햇살이 눈부시게 짱짱했다. 봄볕과 어우러진 길가의 이름 모를 새하얀 꽃들이 마치 나를 미지의 낙원으로 안내하는 듯했다. 불안감으로 요란하게 뛰던 심장박동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바람결에 이따금 스며 나는 바다내음이 내가 완전히 낯선 곳에 와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 눈을 뜬 이후로 모든 게 조금씩 낯설었다. 집도, 사라진 엄마도, 대답 없는 동생도. 내가 보지 못하는 일상 속 어딘가에 틈이 생긴 것 같았다.



그렇게 30분 가까이 걸어 할머니 산소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에 엄마는 없었다. 엄마 대신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반쯤 채워져 있는 막걸리 한 병이었다. '엄마가 왔다 간 걸까?' 나는 뚜껑을 열어 병 속 냄새를 훑었다. 오래된 막걸리에서 날 법한, 시큼하다 못해 코를 뚫을 듯 역한 냄새가 달려들었다. 무덤 주변에는 동물이 파먹은 듯 앙상한 모습으로 갈변된 사과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순간 팔 위 잔털들이 곤두서는 듯했다. 내가 엄마와 마지막으로 함께 이곳에 온 건 1년 전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이것들을 여기에 두고 간 것일까? 엄마와 나를 제외하면 할머니 무덤을 찾아올 만한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잠시 앉아 숨을 고르며 잔물결이 반짝이는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인사 한 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엄마가. 엄마는 내게 당연한 사람이었다. 공기나 물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가 누려야 마땅한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엄마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었다. 이렇듯 말 한마디 없이.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망망대해를 앞에 두고 너무 막막해진 마음을 어쩌지 못한 내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때 어디에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밤 엄마가 듣고 있던 바로 그 노래였다. 평소와는 달리 바람을 타고 흐르는 가사가 귓가에 알알이 들어와 박혔다.


 ‘이 모든 것은 꿈이었어. 사랑도 인생도~~ 돌아 서 후회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일 뿐...'


'이런 가사였던가?' 내가 의아해하고 있던 찰나, 동생에게서 카톡이 날아들었다.


- 엄마는 잘 있으니까 걱정 마. 엄마가 그렇게 보고 싶으면 평소에 좀 잘하지 그랬어?! 그런데 언니, 지금 언니가 보고 듣는 모든 게 꿈이면 좋겠지?


동생은 마치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내 뒤통수로 무엇인가가 날아들었고, 놀란 나는 소리를 내지르다가… 눈을 떴다.



아이보리색 천장이 보였다. 익숙한 나의 방 안이었다. 머리 위로 어젯밤에 읽다만 책이 떨어져 있었다.

도서명 『엄마를 부탁해』. 제대로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수리 부위가 얼얼했다.

거실에는 익숙한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시계를 봤다. 오늘은 4월 20일 토요일. 해가 비쳐 들기 시작하는 아침이었다.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나는 볼 위로 찐득거리는 식은 눈물 자국을 훔쳐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깊고도 긴 숨을.



* 이 이야기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막 화를 보고 난 후의 충격과 허망감을 상기해 보며 쓴, ‘재벌집 막내아들’을 향한 소심한 오마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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