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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북스 May 19. 2023

강남구 봉은사로 50길

같은 장소 다른 느낌

27살 때 나는 선정릉역 근처 강남 경복아파트 사거리에 외국계 회사를 다니며 프랑스 부사장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선정릉역이 없어서 선릉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야 했다.) 나는 비서라는 직업이 나를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만큼 계획한 일이 스케줄 대로 움직이는 것에서 큰 안도감과 쾌락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우리 회사는 강남 경복아파트 사거리에 있었는데, 굉장히 예민하셨고, 무뚝뚝한 (그래서 내 이전의 비서들을 몇몇 해고한) 프랑스 부사장도 나의 일하는 스타일을 굉장히 맘에 들어했다. 그 당시에 직장인들은 동아리 하나쯤 활동하고 있었는데, 나는 퇴근하고 댄스 동아리에서 춤을 추기도 했고, 주말에는 영어스터디 그룹에 들어가 함께 공부도 했다. 그 당시 부천에서 출퇴근을 했는데, 회사가 멀어도 아침마다 선릉역에서 내리는 건 매일 아침 나에게 ‘아~ 나도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있는 직장인의 이미지에 잘 부합하고 있구나.’ 하는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었다. 


그 후 송파로 신혼살림을 결정한 나는 송파에 있는 회사로 이직을 했고, 그렇게 나의 화려하다면 화려했던 강남 생활은 끝이 났다. 첫째가 태어나고도 어머니와 같이 살며 어머니가 첫째를 봐주셨고, 나는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00군에 속해 있는 게 좋았다.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는, 맞벌이하는 부부" 요즘은 더 흔해진 그 타이틀이 좋았다. 그 사이 우리는 둘째를 깊이 고민했고, 둘째를 갖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때는 미련 없이 그만두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수 있겠지?!' 하며 퇴직했던 게, 복귀는 커녕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너무 다르게 변했으니, '내 인생에 다시 복귀가 있을까?! '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가 태어나고는 청각장애 진단을 받고 나는 나의 화려한 강남 생활을 회상할 겨를도 없이 3개월 된 아이를 카시트에 태워 주 2-3회를 언어치료, 음악치료, 청력검사를 다니기에 바빴다.

나는 그때 정말 도윤이를 잘 듣고 잘 말하게 하기 위해 집에서 그림책 읽어주는 선생님도 되었다가, 뒤에서 소리를 들려주고, 도윤이가 뒤를 돌아보면 해당 단어의 카드를 보여주는 언어치료사도 되었다가, 음악연주를 해주는 음악치료사 역할도 톡톡히 했다. 도윤이가 잘 듣게 되길, 잘 말하게 되길!! 나는 집과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며 그 생활에 푹 빠져있었다. 


둘째가 4살이 되었을 때는 듣고 말하게 되면서 나도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고, 같은 아픔을 가진 엄마들과 연락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강남에 있는 00 복지관에서 부모교육이 있어,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강남, 오랜만의 선릉역,.. 어? 여기? 거의 6-7년 만에? 여기를?!....

00 복지관은 알고 봤더니, 27살을 보낸 열정 가득했던 그곳! 강남 경복아파트 사거리.. 예전 직장 5분 거리에 있었다. (이제는 경복아파트 마저 없어졌다.) 심지어 그곳은 회사사람들과 점심 먹으러 걸어 다니던 지역, 회식하던 곳! 청각장애 전문 00 복지관.. '내가 우리 아이의 장애로 여기에 오게 되다니..' 이건 뭐 같은 옷 다른 느낌도 아니고.. 같은 장소, 다른 느낌.. 참 기분이 이상야릇했다. 직장인 시절에 그곳에 청각장애 전문 복지관이 있는 것조차 몰랐고, 관심도 없었는데, '몇 년만의 강남을 이렇게 온다고?' 나를 참 겸손하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내 평생 여기에 청각장애 복지관이 있는지 몰랐으면 더 좋았겠다'... 는 생각까지 들었다. 둘째를 낳고 입버릇 처럼 하는 말. "인생 모른다". 또 다시 나는 "인생 모른다." 였다. 


그 후로도 00 복지관은 내 아이와 수업을 들으러 가기도 했고, 내가 난청아이들과 영어그림책 수업을 진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는 '내가 여기서 일하긴 했었나?" 그 기억조차 가물가물 해지고, 내 아이에게 더 익숙한 곳이 되었다. 그곳은 더이상 나의 젊은 시절 직장생활을 한 곳이라기보다 내 아이의 언어치료실, 난청 친구들을 만나는 곳..으로 인식된다. 몰랐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다시 가야 할 곳이라면, 내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좋은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곳이길 기대해 본다. 


2008년쯤의 나와... 2023년의 나... 

바람마저 다르게 느껴지는 그 곳!

그리고 참 많이 달라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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