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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북스 May 24. 2023

고요한 너의 세상

청각 보조기기 와우로 듣는 세상

청각 보조기기로 소리를 듣는 난청 아이에게 가장 큰 장점은 소리를 들을지 말지 아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각 보조기기 와우가 없으면 우리 아이는 전혀 어떠한 소리도 들을 수 없으니, 요즘은 그게 좋을 때도 있겠다 싶다. 우리는 귀를 아무리 틀어막아도 소리가 전혀 안 들리는 적이 없는데, 가끔 쥐 죽은듯한 세상으로 가는 느낌은 어떤 마음일까?!


오늘도 아이는 아침 6:40쯤에 일어나 혼자 거실에 나가 책을 읽는다. 잠에서 깬 나는 둘째가 옆에 없어 "도윤아" 하고 불렀는데 대답을 안 하는 것 보니 또 와우를 끼지 않은 모양이다. 요즘은 일어나자마자 와우를 끼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잘 때와 샤워할 때 빼고는 아이가 잠시라도 소리를 놓치는 게 싫어 무조건 와우를 끼워 주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아이가 그 시간을 우아하게 즐기고 있는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했다. 나도 일곱 시쯤 거실에 나와 아이 앞에 독서할 준비를 하고 아이패드로 찬양연주곡을 틀고, 커피를 내렸다. 아이는 찬양 연주도, 커피 내리는 소리도 듣지 못한다. 그러다 7:30 쯤에 밖에서 공사를 시작하는 소리가 두두두두 들렸다. 나는 이른 아침 시작된 그 공사소리가 듣기 싫어 죽겠는데 내 아이는 참 평온하다. 갑자기 아이가 책을 읽다가 "엄마, 투포환이 뭐야?"라고 묻길래, "어,, 무거운 쇠구슬 같은 게 있거든.. 그걸 던지는... 아.. 너 와우 안 꼈구나."하고 나 자신이 머쓱하다. 들리지도 않으면서 아이는 '자기가 언제나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자주 그렇게 묻는다.  그 뒤로 1시간 동안이나 아이는 조용한 세상에 잠시 다녀왔고, 학교 갈 채비를 하며 세상의 소리와 만났다. 


아이는 요즘 소리를 선택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잔소리를 시작하면 와우를 뺐다가 내 잔소리가 끝나면 와우를 붙이고, 극장에서 너무나 큰 액션장면 소리에 와우를 뗐다가 장면이 끝나면 와우를 끼운다. ‘너는 소리를 골라들을 수 있어서 좋겠다.’ 가끔 듣기 싫은 소음이 들릴 때는 그런 생각도 든다. 


처음 수술할 때 '너에게 예쁜 소리만 들려줄게'라는 결심을 했었는데, 이제는 조금 컸다고 자신이 예쁜 소리를 골라 듣는다. 엄마는 죽어도 모르는 소음 없는 너의 고요한 세상에서.. 너의 마음의 목소리를 잘 경청하는 네가 되길.... 그 고요한 바다 같은 세상에서 자신의 예쁜 소리 많이 듣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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