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게 떼어주리라)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무척이나 ‘외모지상주의’ 엄마였다. 아이의 단정함을 챙기기보다는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히고, 어떤 유명한 사교육을 받느냐가 내게 더 중요한 시기였다. 첫째 등굣길에 아이의 전체 아웃핏을 보며 만족해했고, 그 뿌듯함으로 학교를 보내고는 어깨가 든든했다. 계절이 바뀌면 신세계 백화점 키즈 코너에서 17만 원짜리 반바지를 사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엄마였다. (그래서 돈이 없나?! ㅋ) 그때 나는 아이의 옷매무새보다 옷 브랜드가 중요했고, 아이와의 아이 컨택보다 옆집엄마들의 시선이 더 중요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게 한 줌의 물거품이었음을 깨닫게 된 지는 둘째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내가 정신을 차린 이후부터였다. (그래서 내 아이의 장애는 나의 설리반 선생님이다.) 작년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둘째가 아직도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는구나'를 깊이 반성하며 '지금 중요한 게 수학진도가 아니라 아이의 기본생활 습관인데..'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둘째는 성격이 좀 헤벌레 해서 인지 바지 중앙 시접이 항상 오른쪽으로 돌아가게 옷을 입었다. “도윤아~ 바지는 중앙선이 꼭 배꼽 아래 오게 입어야 하는 거야. 옷의 가격보다 옷을 얼마나 단정하게 입느냐가 더 중요한 거야." 둘째와 아이컨택하며 이야기를 하는데 학교가방 메고 등교 요이땅을 하고 있는 아이의 눈에는 눈곱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도윤아!!! 세수했어? 세수할 때 꼭 눈곱을 떼야한다고 말했잖아." 그 말을 하는데 몇 년 전 첫째의 아웃핏을 보며 흐뭇했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내가 그때 첫째와 아이 컨택을 했던가?!’ 생각해 보니 첫째의 눈동자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얼마 전 강남에 있는 한 초등학교1학년 교실로 장애이해교육 갔다. 아이들은 보기에도 값비싼 옷을 입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무례함에 좀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전부 교실 앞으로 나와 보청기로 듣기 체험을 한 명씩 하는데.. 아이들 열이면 열.. 눈에 단정치 못한 눈곱이 깨알같이 붙어있었다. ‘이 엄마들은 애들 좋은 옷 입혀놓고 아침에 뿌듯해했겠지? 근데 아이 눈 마주칠 시간 없어 눈곱하나 제대로 떼주지 못했네? 좋은 옷 입히면 뭐 하나?' 하며 속으로 마구 비웃다가 그 모습이 너무나 나의 몇 년 전 모습이라 거하게 소름이 돋았다. 그러고도 한참을 나 자신에게 비웃음 당했다.
지나고 보니 참 빗좋은 개살구였다. 비싼 옷 입혀 뿌듯해했으면서 내 아이 등굣길에 눈 한번 마주치지 않았고, 백화점에 비싼 옷들과 눈은 많이 마주쳤지만 정작 내 아이 눈에 눈곱은 떼주지 못했음이 참 후회가 된다. 첫째는 이제 자신의 방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 기껏해야 밥 먹는 시간에나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내가 미성숙한 엄마였어서 장애가 있는 둘째보다 내 마음 전하지 못했던 첫째가 나에게는 아픈 손가락이다. 둘째를 생각하면 '내가 최선을 다한 것 같아' 웃음이 나는데, 첫째를 생각하면 '내가 온 맘 다하지 못한것 같아' 눈물이 난다. 그래서 첫째를 보며 오늘도 결심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눈을 마주쳐야지.. 단정하지 못한 눈곱 다정하게 떼어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