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고북스 Jun 19. 2023

장애를 오픈하는 크나큰 용기

장애 커밍아웃

둘째는 아직 초등 저학년이라 자신의 두 귀에 달린 인공와우를 잘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초등 고학년이 되면 자신의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엄마인 나는 벌써부터 긴장이다. 사춘기에는 전두엽이 꼬일 대로 꼬이는 시기라 아무리 온순한 둘째라도 어떻게 자신의 장애를 몸 밖으로 표출할지 아니면 아예 꽁꽁 감출지는 겪어보지 않았으니

자신만만해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때가 되면 엄마의 영향력은 거의 밑바닥이 될 것이고, 만약 아이가 반 친구들에게 '절대 와우를 보이면 안 돼' 전략을 쓴다고 한들..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올해 1학기는 서울에 있는 많은 특수교육청에서 앞다투어 신청을 해주셔서 많은 아이들에게 보청기, 인공와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감사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는 조기교육이 되어 좋고, 편견 없는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스펀지에 물이 흡수되는 것처럼 쫙 빨아들이니 좋고, 초등 고학년, 중학교 교실에서는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인정하게 되는 하나의 불꽃같은 시간이 되니.. 청각장애이해교육을 받는 것이 얼마나 두루두루 좋은가?! 하지만, 강사의 입장에서는 모든 수업들이 감사하고, 한마디라도 더 진심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청소년 아이들이 있는 사춘기 득실득실 반에 가서 장애이해교육을 한다는 건 여러모로 참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사춘기 난청아이가 자신의 장애(기기)를 잘 받아들이고 있는가?! 반 친구들에게 서스름 없이 커밍아웃을 했는가?! 에 따라 교육의 방향이나 분위기가 참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청소년 학급에서 많은 수업을 했는데, 2/3 정도의 난청아이들이 자신의 장애를 반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아이들 마다 청력의 정도도 다르지만, 아이들 마다 장애 흡수 데시벨의 정도는 더 제각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난주 목요일에는 초등학교 5학년 반에 다녀왔다. 양쪽에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있는 여자친구 애플이가(가명) 있는 반! 새 학년이 시작되고, 조금 지나서 애플이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인공와우를 소개하고, 자신이 언제 잘 안 들리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오픈이 되어 있는 반에 강의를 가면 아이들은 더욱더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친구에 대해 이제까지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본다. “인공와우를 착용한 친구는 음악이 아름답게 들리지 않을 수 있어.” 하며 음악 시뮬레이션을 들려주면… “애플아, 너도 음악 저렇게 들려?”라고 묻는 친구들… 고학년 여자친구들은 사소한 오해들로 마음이 상할 수 있으니, 잘 안 들려 대답할 수 없는 상황들을 이야기해 주고 오면 되었다. 애플이가 자신의 장애를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기도 했고, 그런 애플이의 엄마가 부럽기도 했다. 좋겠다.

.

오늘은 '절대 와우는 보이면 안 돼' 전략을 쓰는  서울의 양쪽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있는 4학년 남자아이 포도가(가명) 있는 교실에 다녀왔다.


강의 전 특수선생님과 어머님과 통화를 했는데,

두 분 모두 “강의를 신청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아이에 대해 절대 티 내시면 안 돼요. 아이가 친구들에게

와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꺼려해서 머리도 자르지 않고

길고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포도의 마음이 얼마나

매일 무거울까?!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그 마음... 어머니 또한 아이가 친구들에게 다 오픈하고 맘 편히

학교 생활 하기를 바라셨지만, 아이의 마음이 더 중요하니

기다린다고 하셨다.


수업을 시작하러 반에 들어가서 머리 긴 학생을 찾으니, 포도가 눈에 띄었다. 이럴 경우 포도와 절대 눈이 마주치거나 아는 척을 하면 안 된다. 마치 이 반에는 난청아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다행인 건 포도는 다른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잘 지내고 있는 모습에 나는 안도했다.


수업을 3~4교시를 진행하는데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고, 특수선생님, 담임선생님께서 우리 포도를 정말 잘 이해하고 계셨다. 반 아이들 또한 보청기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여, 3교시 후 쉬는 시간 동안 반 전체 아이들과 담임선생님까지 보청기로 소리를 들어 보았다.

“선생님, 너무 시끄러워요. 공부할 때 집중이 안 될 것 같아요. 달리기 할 때 빠질까 걱정돼요”라는 이야기를 반친구들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으니 감사했다.


쉬는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담임선생님께서 나에게 오시더니, “선생님, 포도가 자기 인공와우 착용하고 있다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달라고 하네요.”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 놀라서 “진짜요? 정말요? 아~ 선생님 저 너무 눈물 날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하네요."라고 했다.

.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어디서 그런 용기를 얻었는지.. 어떻게 마음이 바뀌었는지..

포도에게 용기 내주어 정말 고맙다고 멋지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드디어 용기를 내어 자신의 와우(장애)를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하는 역사적인 날!!! 4교시 수업 중간에

“우리 반에도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요.

포도야~ 잠깐 일어나 줄래?" 했더니, 포도 주변의 친구들이 포도에게 엄지 척을 해주는 것이다. 마치 포도의 용기에 반 친구들이 ‘우리에게 이야기해 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처럼...친구들에게 엄지척 당한 아이가 올해 학급에서 친구들에게 친절함을 경험하고, 용감하게 커밍아웃 한 자신이 더 대견하게 느껴져서 5학년 6학년,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 학기 초에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와우를 오픈할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있을까?!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고 한다. 안 그래도 몸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인데, 장애를 갖고 있다면, 그 마음 오죽할까?! 왜 남들은 안 하고 있는 와우를 매일 착용해야 하는지… 보청기, 와우를 벗어던지면 자신은 왜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는지..‘왜 나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몇 백번은 더 하게 될것이다.

.

오늘 포도가 자신의 장애를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던 건..

포도 인생 12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으리라. 포도에게 오늘 청각장애이해교육 수업 시간이

12년 동안 꽁꽁 묻어두었던 자신의 마음의 와우를 홀가분하게 훨훨 벗어던진 날이었기를..


"포도야, 용기 내주어서 정말 고마워!"

작가의 이전글 단정하지 못한 눈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