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부터 어려워~
개별화 협의회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손을 들어보라고 한다면, 난청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중 열에 아홉은 모른다고 답할 것이다. 이름부터가 어렵고, 일상적인 단어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 내용이 무엇인지 감조차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에도 나 역시 그 협의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학교에 특수반이 없었기에 특수 아동을 위한 절차나 회의에 대한 안내는 전혀 받지 못했고, 교육 관련 회의라면 그냥 보통 학부모 상담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1학년 4월쯤 담임선생님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어머니, 개별화 협의회 참석 예정이신가요?" 처음 들어보는 단어 개별화 협의회... "선생님, 그게 뭐예요?" 하고 되묻자, 선생님은 친절하게 답하셨다. "아, 네. 특수 아동을 위한 교육과 지원 계획을 세우는 회의인데요, 보통은 서면으로 의견을 써주시고 사인해 주시면 됩니다." 담임 선생님은 인품도 훌륭하시고 아이들을 정말 사랑해 주시는 분이셨지만, 개별화 회의에 대한 경험은 없으셨다.
처음에는 '서면으로 적어 보내는 것'이 당연한 절차인 줄 알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필요한 지원 사항과 상황을 상세히 적어 사인한 후 전달드렸다. 그렇게 1학기 개별화 회의는 비대면으로 진행되었고, 나는 그저 이렇게 아이의 교육과 지원 방향이 결정되는 건가 보다 하고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갔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개별화 협의회는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특수교사, 학년 주임선생님, 담임선생님, 그리고 학부모가 한자리에 모여 내 아이의 장애를 이해하고, 필요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회의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1년에 단 두 번, 내 아이를 위한 이 중요한 자리를 비대면 서류 한 장으로 대신한 것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2학기가 되자 갑자기 행정 담당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개별화 대면회의를 하자"는 말씀에 부랴부랴 다음날로 일정을 잡았지만, 교장, 교감선생님은 물론 담임선생님조차 참석하지 못하셨다. 특수교육청의 지침에 따라 개별화 협의회는 의무적으로 진행되어야 했기에, 결국 형식적인 회의로 마무리되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부모가 어리둥절해 있으면 학교조차도 장애 아동에 대한 절차나 사전 지식이 부족해서 먼저 챙겨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특수아동이 학교에 입학하면 ‘원터치 시스템’처럼 모든 게 자동으로 진행될 거라 믿었지만, 그건 단지 내 착각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부모가 직접 챙겨야 한다는 현실을 그제야 알게 됐다.
감사하게도 아이 2 학년 때 특수반이 생기면서 특수선생님께서 오셨고, 1학년 때보다는 절차적인 면에서 수월하게 개별화 협의회를 진행했다. 하지만, 아이 학교 특수선생님께서도 청각장애 아동을 한 번도 맡아보신 적이 없으셔서 아이의 보조기기 정보, 청력 상태, 언어평가지, 듣기 어려운 상황, 자리 배치 요청, 지원 사항 등을 꼼꼼히 정리해 선생님께 전달했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아이에 대해 잘 알고 계시고, 개별화 회의에 대한 절차도 익숙해져서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청각장애이해교육 강사로 여러 학교들을 다니다 보니, 학교에 가서 지원 요청을 하는 데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그게 나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머님들께는 학교라는 공간이 굉장히 높은 벽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잘 안다. 어머님들 중에는 학교에 전화하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해하는 분들이 많다.
작년, 같은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님께서 나에게 이런 하소연을 하신 적이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 잘 안 들리는 상황이 많은데 어머님께서는 담임선생님께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선생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겪는 어려움이 개선되지 않는 것을 보며 속상해하셨다. 그때 어머님은 학교에 가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선생님 앞에 서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고, 혹시나 학교에서 지원이 어렵다는 반응이 돌아올까 걱정하셨다고 했다. 결국, 개별화 회의에서도 어머님은 아무 말도 못 하고 회의에 참석만 하셨고, 서류에 서명만 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학교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곳이지만, 부모로서 나서서 요청하지 않으면 그 높은 벽은 쉽게 넘어갈 수 없다는 걸. 그리고 그 벽을 넘어서는 일이 얼마나 막막하고 두려운지 알고 나서야, 다른 부모님들이 겪는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게 됐다. 입학만 하면 특수교육청에서 알아서 내 아이의 상황을 학교에 전달해 주고, 척척 모든 게 진행될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올해 초, 00 나눔 재단의 대학생 팀이 브런치스토리에 올린 내 글을 보고 연락을 주었다. 그들은 사회 약자를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는데, 10개의 팀 중 2팀이 청각장애 관련 주제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중 한 팀과 줌 회의를 통해 우리 둘째의 초등학교 생활에서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난청 아이의 입장을 직접 설명할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한 자리였다.
이 대학생 팀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청각장애 부모와 전문가 등 100명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들의 경험을 깊이 있게 들었다고 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장애아동이 학교에 입학하면 모든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될 거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부모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아무 일도 진행되지 않는다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100명 이상의 난청 부모와 관계자를 만나며 그 대학생 팀은 '개별화 협의회'의 어려움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개별화 회의는 청각장애 아이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 계획을 세우는 중요한 절차지만, 많은 부모들이 그 절차와 내용을 잘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 팀은 난청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이 대학생 팀의 노력 끝에 탄생한 '아이소개서' 솔루션은 개별화 협의회를 더 쉽게 만들기 위한 중요한 도구다. 그 과정은 매우 간단하지만 효과적이다. 먼저, 1차 상담에서 아이의 특성과 요구 사항을 부모와 함께 정리한다. 2차 단계에서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맞춘 개인 맞춤형 '아이소개서'를 작성하게 된다. 이 소개서는 아이의 장애 정도, 교육 환경에서 필요한 지원 사항 등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그리고 3차 상담 후 수정을 거쳐, 부모가 개별화 협의회 때 그 소개서를 들고 담임선생님을 만나, 아이가 학교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과 필요한 도움을 논의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종이 한 장이 난청 아이 부모님들에게는 큰 부담을 덜어준다. 담임선생님에게 무작정 내 아이의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정리된 정보를 바탕으로 학교와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담임선생님도 아이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어, 개별화 회의가 형식적인 절차가 아닌, 실질적으로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회의가 될 수 있다. '아이소개서'는 마치 나침반처럼, 부모가 길을 잃지 않고 회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이 프로젝트가 대학생들의 일시적인 활동으로 끝나버리면, 이 훌륭한 솔루션이 지속적으로 활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다. 재활이 잘 된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큰 문제가 없겠지 하고 개별화 회의에 소홀해지기 쉽다. 하지만 유치원과 학교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다. 학교에서는 아이가 겪는 문제들이 유치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진다. 다른 친구들과의 상호작용, 수업 중에 발생하는 청각적 어려움, 교실에서의 소음 등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들이 생긴다.
이때, 엄마가 적극적으로 지원 요청을 하고, 아이의 청각적 환경을 잘 조율해 준다면, 아이는 친구들의 이해 속에서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개별화 회의는 단순한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아이가 학교에서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받고,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이 솔루션을 적극 활용하고, 학교와의 소통을 잘 이어나가야 한다.
결국, 아이가 도태되지 않고 학교 생활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부모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대학생들이 만들어낸 이 작은 변화에 부모님들이 함께 동참한다면, 아이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개별화 협의회 3년 차, 학교에서도 아이의 기기와 장애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높아졌고, 필요한 지원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사실 엄마로서 내가 두렵고 어렵게 느꼈던 순간에도 그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학교를 찾아가는 것은 하소연하거나 민원을 제기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더 나은 환경에서 배울 수 있도록 선생님과 특수교사, 그리고 학교와 협력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 아이를 함께 키우는 사람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다.
엄마들께 용기를 내어달라고 간절히 부탁드리고 싶다. 때로는 학교의 문턱이 높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엄마가 나서지 않으면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황이 안타깝게도 이런 현실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학교와 대화를 나누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아이를 위한 이 작은 발걸음이,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열어주는 중요한 한 걸음일 것이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학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나서주길 바란다. 함께라면, 우리 아이들은 더 좋은 듣기 환경에서 건강한 장애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