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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북스 Oct 14. 2024

불쌍한 장애인, 창피한 인공와우

비(未)장애인

1학기 때 둘째 반에서 청각장애이해교육이 있었다. 물론 내 아이가 속한 반에는 강의를 가지 않는다. 눈물이 터져버릴까 봐... 매년 그렇다. 대신 서울지역 강사님 중 한 분이 둘째 반에 가서 강의를 해주신다. 그런 강사님들이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그날 아침, 등교 전에 둘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오늘 청각장애 이해 교육 선생님이 오셔서 너와 친구들한테 와우에 대해 설명해 주실 거야. 1년 동안 오해 생기지 않고, 친구들이 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도와주실 거야. 네가 잘 안 들리는 상황도 설명해 주시고, 수술받았던 사진도 보여주실 거야."


요즘 둘째는 누구에게도 주목받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이 올라간다는 말에 “안돼!”라고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나는 조심스레 설득했다. "네가 이렇게 용감하게 수술받고 언어치료를 열심히 했다는 걸 친구들이 알게 되면 좋을 것 같아. 그러면 너를 더 잘 이해해 줄 거야." 둘째는 여전히 쑥쓰러워 했지만, 유치원 6살 때부터 매년 받아온 이해 교육이 학급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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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후 강사님과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했다. 평소에도 친분이 있는 강사님이었기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무엇보다 둘째네 반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했다. 강사님의 청각장애 이해 교육 콘텐츠는 언제나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 그만하면 걱정할 게 없었다. 강의도 얼마나 재미있게 하셨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아이들도 분명 즐겁게 참여했을 것이라 기대하며 후기를 들었는데,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강사님은 말씀하셨다. "강의 중에 학급에 어떤 남자아이가 ‘장애인은 불쌍하다. 내가 인공와우를 하고 있다면 창피했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어요. 제가 유연하게 잘 넘기긴 했는데... 그때 00이 표정이 웃다가 갑자기 어두워지더라고요. 한 번 잘 살펴보세요."


그 순간, 내 마음속에 무언가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이의 웃던 표정이 어두워졌다는 말에 온갖 생각이 스쳤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둘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당장이라도 하교하는 그 남자아이를 붙잡고 묻고 싶었다. "장애가 불쌍한 거니? 인공와우가 창피한 거니?"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 화를 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속으로 답답한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그 아이에게 윽박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이 녀석! 네가 이제껏 겪었던 과정을 알아? 00가 얼마나 용감하고 멋지게 자라고 있는지 너는 모를 거야!"


줄넘기 끝나고 둘째가 셔틀에서 울면서 내리면, 그 자리에서 당장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둘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들로 가득했다. 아이가 줄넘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파트를 걸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날 저녁, 아이가 아파트를 돌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00가 나한테 장애인이라 불쌍하다고 했어." 내 예상보다 빨리, 아이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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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 들으니까 기분이 어땠어?"
아이는 내 눈을 보며 별 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뭐... 상관없었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건 걔 마음이니깐."


나는 아이의 무덤덤한 대답에 안도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정말 괜찮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00아~ 와우는 어때? 와우가 창피할 때가 있어?"

이번에도 아이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니, 전혀. 그냥 잘 듣게 해주는 고마운 기기지."


혹시나 친구의 말에 상처받고 울면서 셔틀에서 내리지 않을까, 줄넘기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조마조마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둘째는 밝은 얼굴로, 아주 기분 좋게 줄넘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아직도 나는 내 아이를 잘 모르고 있구나.' 내 불안과 걱정은 결국 소심한 엄마의 몫일 뿐이었다.


"내년에도 청각장애 이해 교육 할까?" 나는 슬쩍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애들이 와우에 대해 더 이상 안 물어보니까 편해."


아이의 대답을 들으며, 반 친구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의 중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던 것도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사진이 올라간 것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을 거다. 상처받았다기보다는 단순히 주목받는 상황이 불편했던 것이다.


문득 나는 생각했다. '불쌍하다'는 말을 들었던 게 오히려 잘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세상은 언제나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말들도 마주하게 될 텐데, 그런 말도 들으며 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세상은 정글과도 같고, 아이가 앞으로도 장애인이라는 말, 혹은 그보다 더 모질고 상처될 수 있는 말들도 듣게 될 텐데 말이다. 현실은 착하기만 한 세상이 아니니, 그런 경험을 통해 내 아이가 더 단단해질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런 말들을 다 들어도 결국 중요한 건 내 마음을 꺾는 것이 친구의 상처 주는 말도, 나를 불쌍하게 보는 눈길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지듯, 마음도 그렇게 단단해지기를. 아이가 앞으로도 그런 경험을 통해 더욱 강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사춘기가 와도, 혹여 친구들 앞에서 음치 노래를 부르게 되는 상황이 온다 해도 아이가 당당하게 그 순간을 즐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청각장애 이해 교육이 끝난 후, 나는 아이와 자연스럽게 수술 때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매년 이 날은 아이의 수술 사진을 보며 그때의 마음을 아이와 이야기 나누고, 아이의 용기에 그리고 와우에 대해 고마움을 나눈다. 나는 매해가 거듭할 수록 이런 시간들이 아이와 나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는 그때 정말 마음이 미어졌어. 너 미어졌다는 마음이 어떤 건지 알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어."

내 말을 들은 아이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역시 나를 생각해 주는 건 엄마밖에 없어. 나 눈물 난다."


둘째의 진심 어린 반응에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이가 이제는 내 마음을 이렇게 알아주는구나,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이 가득했다. 속으로는 '너를 눈물 나게 하는 게 친구의 상처되는 말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알아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되뇌었다. 그 순간, 아이의 성숙한 반응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둘째와의 대화를 마친 후, 첫째에게도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첫째는 어느새 내 편을 참 잘 들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날 강의 중 아이 친구가 "장애인은 불쌍하다"라고 말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첫째는 이야기를 듣더니, 단번에 사이다 발언을 내뱉었다.


"엄마! 그렇게 이야기한 애가 더 불쌍한 애야."


그 한마디에 나는 그동안 가슴속에 꽉 막혀 있던 고구마가 쑤욱 내려가는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첫째의 사이다 같은 말 한마디가 나를 너무나도 시원하게 해주었다. 정말, 그런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때로는 무지하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들이 더 불쌍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비장애인이라는 말에서 비는 아닐 비(非)가 아니라 아직 비(未)라고 해석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 장애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으려는 건데, 이건 누구나 언제든지 장애를 경험할 수 있다는 걸 인식하고 공감하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즉, 아직 장애를 경험하지 않은 상태일 뿐, 언제든 장애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또한 그랬으니깐... 겪기 전에는 정말 모를일이고 내 일이 아니니, '불쌍하다'의 측면에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내 마음을 쓸어내렸다. '혹시 아이가 정말 친구의 말에 상처받았을까?' 하는 걱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날 하루는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담임선생님의 세심한 관심 덕분에 아이와 친구들의 관계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반 친구들의 수준 높은 이해도와 관심이 아이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는 것도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의를 재미있고 알차게 해주신 강사님 덕분에 둘째가 이번 학년도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장애인은 불쌍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처음엔 조금 불편했지만, 아이가 그 말을 듣고 상처받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오히려 그런 말을 듣는 경험도 아이가 더 강해지는 데 필요한 일종의 훈련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은 꽃길만 있는 것이 아니니, 앞으로도 살아가며 더 많은 도전과 상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꺾지 않고,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이런 말쯤은 이제 우리가족에게는 암시렁도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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