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침묵을 배우는 시간 - 코르넬리아 코프
책제목: 침묵을 배우는 시간
작가: 코르넬리아 코프
출판사: 서교책방
한줄평: 칭찬 대신 입을 다물자.
별: ****
코르넬리아 코프 작가의 '침묵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책은 침묵이 주는 장점들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그중에 "조언 대신 침묵하면 상대방이 생각하기 시작한다."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 수학 숙제 했어? 얼른 끝내."라며 쉬지 않고 조언을 쏟아냅니다. (나는 조언이라 쓰고, 아이들은 잔소리라고 읽는다.) 때로는 엄마가 너무 앞서 나가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주지 않고 엄마가 모든 답을 제시해 버리곤 합니다. 결국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에요. 부모가 아이 대신 모든 것을 생각해 주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육아 목표를 '독립'으로 설정해 두고도, 매일 독립하지 못하는 것은 정작 우리 부모들입니다. 아니, 엄마들입니다.
내 마음과 꼭 닮은 책 한 구절 - p26
자문과 코칭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자문은 상대에게 선의의 조언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의 최악의 적은 선의다"라는 말이 있다. 코칭은 이 사실을 깨달아 조언을 줄이는 대신 상대가 스스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잔소리꾼 엄마의 '조언'을 들을 리 만무하죠. 아이들이 나의 말을 듣지 않을 때면, 저는 주말에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남편에게 곁눈질을 시작합니다. 이번에야말로 침묵하기를 결심하지만, 결국 남편의 잘못으로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선언하며 끝을 맺게 되어요. 내가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고 모순덩어리인 판결입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아, 내가 정말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구나.'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내가 했던 잔소리들이 귓가에 맴돌며, 결혼 내내 조언 대신 침묵을 지키는 남편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되었습니다.
작년에 우리 가족 모두 뇌인지 기반 성향과 성격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후 선생님께서 남편과 내 검사 결과지를 보시더니, "남편이 아내에게 잔소리를 안 하시나 봐요. 아내분의 창의력이 굉장히 높게 나왔네요. 그렇다는 건, 아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는 거예요."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정말 그러했습니다. 결혼할 때부터 지금까지 남편은 "너 왜 이거 이렇게 한 거야?"라든지, "그건 아니지, 그건 안 될 것 같아."라든지 하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내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고 하면 항상 "해봐.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라고 딱 두 마디만 해주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제가 청각장애 이해 교육 강의를 갈 때였습니다. 남편이 "나도 참관해 보면 안 될까? 너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라며 제가 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고, 그 응원 덕분에 저는 제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침묵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남편이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으니, 오히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지?', '내 커리어를 더 단단하게 쌓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지?', '이런 일을 해보면 어떨까?' 등등. 결혼 이후 제 생각의 나무가 매년 조금씩 자라난다 데는 남편의 침묵 덕분이었음을 요즘 깊이 깨닫게 됩니다.
물론, 저희 남편이 다정다감한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만든 음식을 먹고 "우와, 정말 맛있어."라고 크게 리액션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둘째가 청각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도 남편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자식인데 이렇게 무덤덤할 수가 있나.' 들쭉 날쭉이 없는 성격이 그때는 참 서운할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없는 무한한 신뢰덕에 저는 마음 편하게 둘째의 언어 치료를 진행할 수 있었고, 청각장애 이해 교육 강사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침묵이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나에 대한 신뢰와 지지의 표현이었다는 걸 이제야 느끼네요.
얼마 전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여보, 생각해 보니깐,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오빠는 하지 말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 그렇지?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너무 고마운 일이었어." (이럴 땐 침묵보다 표현이 좋다고 생각함 ㅋ) 남편은 "그렇게 생각해 주면 내가 고맙지."라고 해주었습니다.
결국, 침묵은 그저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서로가 침묵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주고, 그 안에서 더 나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요. 앞으로는 내 말을 줄이고, 침묵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그저 "해봐, 너라면 할 수 있어."라는 말 한마디로 충분하다는 것을, 이제는 깊이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제 자신도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