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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북스 Nov 14. 2024

해주는게 아니라 수용하는 것 - 위로

[책] 당신이 옳다 - 정혜신 적정심리학

책제목: 당신이 옳다

작가: 정혜신

출판사: 해냄

한줄평: '네가 그랬다면 이유가 있었을거야.'

별: ******


한 달에 두 번, 둘째와 넷째 화요일에 Page Turners(책장을 넘기는 사람들) 독서 모임이 있습니다. 아이 학교 어머님들 7명이 모여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귀한 자리예요. 처음에는 단순히 필사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1년이 되었고 이제는 제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독서 모임은 생각보다 제 삶에 큰 치유가 되는 시간입니다. 책을 통해 나누는 이야기들은 처음엔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점점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멤버들을 보며 동질감과 위로를 얻게 되었어요. 저 역시 기대 이상의 효과를 느끼고 있습니다. 모임이 지속될수록 제 머릿속에는 "위로"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멤버들끼리 특별히 조언을 하거나, “힘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를 받고 있더라고요. 위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느끼게 되는데 말이죠.


사실 저는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힘내"라고 말하면서도, 그 말이 정말 상대에게 힘이 되는지 확신이 들지 아않습니다. 아이의 장애 진단을 받고 주변 친구들, 가족들, 아는 분들이 하나같이 "힘내. 잘 될 거야."라고 진심으로 말해주셨는데, 그 말들이 오히려 화가 났던 적도 있었습니다. 정말 절망의 끝에 서 있으면 그런 말들이 약 올리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거든요.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은 네가 내 마음을 알기나 해?' 이런 생각에 속으로 화가 나곤 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테니까요.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어요.


그 이후로 이상하게 저는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는 위로를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시간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네 입장이 되어 보진 못했지만, 내가 너라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 이 정도면 위로가 될까요? 아니면 말보다 손을 잡아주고 기도해 주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될까요? 아~ 위로는 참 어렵습니다. 

그러다 당신은 옳다 책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수히 읽고 읽은 책! 저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책입니다.


내 마음과 꼭 맞는 책 한 구절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이 구절을 읽고 '아하' 공감이 되었습니다. 가장 절박하고 힘든 순간에 우리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떤 조언이나 해결책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한마디일지도 모릅니다. "네가 그랬다면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야." 이 짧은 말 한마디가 주는 힘은 대단합니다. 이 말은 나의 판단, 나의 선택, 나라는 사람 자체를 존중하며 수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수용이 없다면 우리가 주는 어떤 조언이나 도움은 공허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바꾸려는 시도 대신, 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든 그 순간 최선을 다했음을 믿어주는 태도를 담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 단순한 믿음 하나가 상대방의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는 커다란 힘이 되기도 합니다.


위로란, 누군가를 구하려 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온전히 수용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였던 것 같아요. 제가 독서 모임에서 진정한 위로를 느낄 수 있었던 이유가요. 멤버들은 저를 판단하거나 "네가 이렇게 해야 해"라는 조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 이야기를 그저 있는 그대로 들어주었어요. 저를 "있는 그대로의 나"로 받아주는 그분들의 태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위로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들 말해줍니다.


"맞아, 그래. 엄마도 이유가 있는 거예요."
"엄마도 사람이잖아요."


이 간단한 말들이 무언가를 해결해 주거나 특별한 조언을 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에는 무엇보다도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존중받고 수용받는 순간, 진정한 위로를 느낄 수 있었던 거죠. 독서 모임은 그래서 제게 단순한 취미 이상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존재 자체를 수용받으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귀한 자리로요.


얼마 전, 지인의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의 오빠였다고 해서 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 들었기에 어떻게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카톡으로는 왠지 조심스럽고, 시간이 지나니 대면해서 말을 꺼내는 것조차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위로란 꼭 말로만 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위로받았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힘내"라는 말보다 더 위로를 받았을 때는 내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줄때 였거든요. 손을 잡아주거나,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그 존재감 자체가 큰 위로였습니다. 누군가가 내 아픔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더는 말이 필요 없었으니까요. 아마 지인의 마음도 그랬을 겁니다.


내 마음과 꼭 닮은 책 한 구절 

한 사람이 제대로 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스펙이 감정이다. 감정은 존재의 핵심이다.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성향, 취향 등은 그 존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중요한 구성 요소들이지만 그것들은 존재의 주변을 둘러싼 외곽 요소들에 불과하다. 핵심은 감정이다. 내 가치관이나 신념, 내 스승의 견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오로지 '나'다. 그래서 감정이 소거된 존재는 나가 아니다 희로애락이 차단된 삶이란 이미 나에게서 많이 멀어진 삶이다. 

결국, 위로란 누군가의 아픔을 해결하거나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함께 머물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정은 그 사람의 핵심이고, 존재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위로는 그 감정을 부정하거나 덮어버리는 말 대신, "당신이 느끼는 그대로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있습니다. 지인의 슬픔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조심스럽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다가가 그가 자신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 아닐까요? 꼭 말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요.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 모든 마음, 충분히 느끼셔도 괜찮아요. 저는 그냥 여기 있어요.”


때로는 위로의 본질이 말이 아닌 존재 자체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저 함께 있음으로써 지인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의 쉼을 선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감정을 수용하는 것, 그것이 진심 어린 위로의 시작이니까요.


질문 3가지 

1.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았을 때는 언제였나요? 

2. 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나요?

3. 나의 감정도 누군가에게 그대로 수용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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