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활용법 中
[25일 11 p.m.]
삼거리 맞은편,
오피스텔로 보이는 15층 건물 앞 1차선에서 교통통제가 일어났다.
사실 늦은 밤이라 차가 많이 다니진 않지만 현장 보존을 위해 쳐놓은 바리게이트였다.
한 시간 전쯤 도착한 AI수사대는 이미 조사를 마치고 자리를 뜬 후였다.
누가 봐도 사고사.
형사는 바리게이트 앞 전봇대 밑에서 짐짓 심각한 듯 미간을 만졌다.
‘이번이 두 번째’
낮게 중얼거리며 형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선배님. 피해자 방금 사망했다고 합니다.”
후배인 듯 보이는 큰 덩치의 남자가 조심스럽게 비보를 전했다.
사고를 낸 차량은 조금 뒤 견인될 예정이었다.
처음으로 발생한 자율주행 차량의 사고 보다 그와 그의 휴대폰 속 세상은 다른 부분에 더 관심있었다.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24시간 세계적인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업으로부터 피해자가 받은 메세지가 공개된 이후로 인기검색어에는 그 회사와 피해자의 사망 시각이 상위권에 있었다.
얼마 전에 기사로 봤을 때는 심드렁하게 넘겼던 사건을 똑같이 겪게 된 형사는 골치 아픈 듯 쓰레기통에 껌을 뱉으며 메세지 내용을 읽었다.
“24시간 뒤 당신은 사망할 예정입니다.”
[24일 11 p.m.]
자기 전에 포털사이트 메인 뉴스라도 한 번 보고 자려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름끼치는 내용 뿐 만 아니라 그 메시지가 얼마 전에 자신이 큰맘 먹고 결제한 시스템으로부터 날라 온 내용이었던 것이다.
모든 걸 예측할 수 있다고 해서 정보 동의를 하고 가입을 했던 건데 가입 후 몇 일간 회신이 없어 사기를 당했나 싶어 환불을 마음먹고 있었던 차였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문자를 받다니.
오피스텔 침대에 앉아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스팸이나 보이스 피싱 같은 그런 종류의 사기성 문자일 거라고 예상했다.
다른 친구들은 교통 딱지가 떼인다거나 경품에 당첨되는 등의 문자를 받았다던데 자신만 이런 장난 같은 문자가 올 리 없다고 생각했다.
문자 온 번호로 전화를 걸어볼까 했지만 이런 문자가 대개 그런 심리를 노리고 보낸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곤 휴대폰을 바닥으로 던졌다.
‘장난이거나 사기겠지.’
[25일 10 a.m.]
결국 문자가 신경 쓰여 출근을 못했다. 직장 상사한테는 대충 몸살 감기인 것 같노라고 둘러댔다.
평소에 자신을 괜찮게 봐주는 상사여서 어설픈 연기에도 쉽게 속아주었다.
왠지 그런 연기를 하고 나니 몸살이라도 진짜 난 듯 그는 으스스 떨며 이불을 온 몸에 칭칭 감고 침대 맡에서 노트북을 켰다.
오늘 하루 종일 집 밖을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렇게 24시간을 버티다 보면 결국 그 장난 같은 예언문자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노트북을 켜 놓고 그는 검색어에 그 회사 이름을 쳤다.
“와. 주식 장난 아니네.”
불과 작년 까지만 해도 이렇게 우량주는 아니었는데.
주식가치가 그새 몇 십 배 뛰었다.
이게 다 인공지능을 통해 데이터를 분석해서 개인의 생로병사를 예측해준다는 광고 덕분이었다.
처음에 출시된 지 몇 달은 검증할 수가 없어 이정도로 관심 받지 못했는데 그 후로 속속들이 후기가 올라오면서 주가가 확 뛴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한 달 전 김모양의 사고가 있은 뒤로는 가입자가 만 명대로 폭주하였다.
김모양이 납치될 사실을 시스템이 미리 예측을 한 덕분에 위치추적기를 갖고 다니던 그녀를 경찰이 몇 시간 만에 찾았던 사건이었다.
빅데이터와 이를 통해 예측하는 인공지능의 위력을 본 사람들은 너도나도 시스템의 회원이 되었다. 그도 이걸로 교통위반 딱지를 예측할 수 있었던 동료의 강력한 추천과 종용으로 가입을 했다.
하지만 이게 이렇게 후회가 될 줄이야. 오늘만 지나면 내일 그 동료의 주리를 틀 생각을 하며 그는 다시 웹 서핑을 했다.
[25일 6 p.m.]
그는 노트북 화면을 보느라 건조해진 눈을 껌벅거리며 화면을 닫았다.
전자파를 오래 쐬어서 그런지 하루 종일 환풍이 안 되는 오피스텔 방 안에만 있어서 그런지 그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두 손으로 누르며 벽에 기댔다.
혹시나 시스템에 오류가 있다는 후기가 있으면 찾아볼랬는데.
광고인지 진짜인지 다들 잘 맞아서 소름 돋았다는 내용의 글밖에 없었다.
혹시나 해서 그 회사 고객센터로 전화를 해봤지만 기계음만 들릴 뿐 어떤 번호도 상담원으로 연결해주지 않았다.
‘에라이.’
아무데서도 기대하던 글을 볼 수 없었던 그는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웠다.
이제 5시간 남았다.
5시간만 지나면 이 문자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이 회사의 첫 번째 오류는 자신이 되는 것이다.
우선 내일이 되면 이 문자의 진위여부부터 따진 뒤 해당 회사에 글을 남겨 자신이 지불했던 돈과 오늘 하루 동안의 정신적 물질적 피해보상을 얘기하리라.
대기업을 상대로 싸워보진 않았지만 그렇게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서비스인 만큼 그들도 초반에 이런 흠집 내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적절한 보상을 주고 덮으려고 하겠지.
그는 이 문자가 사실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게 끝난 뒤엔 인공지능이 보낸 문자로 밝혀지길 바라고 있었다. 이런 망상을 하며 누워있으니 그의 눈꺼풀이 점점 감겼다. 문자를 받은 이후부터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한 게 원인일 것이다. 차라리 그는 눈을 감고 일어나면 내일 아침이길 바라며 잠들었다.
[25일 9:30 p.m.]
“헉.. 헉..”
시끄러운 화재 경보음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불길한 예감.
그는 옷을 갖춰 입을 새도 없이 잠옷 바람으로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어디서 불이 났는지 모르지만 위층에서 시끄럽게 소리가 나고 있었다.
앞집에선 사람이 없는지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5층 높이를 느낄 새도 없이 계단으로 한 번에 내려오자 오피스텔 앞 삼거리가 눈에 보였다. 자다 일어나 바로 뛰어서 그런지 숨이 쉽게 편해지지 않았다.
아마 깊게 잠들었다면 못 들었으리라. 문자를 신경쓰느라 깊게 잠들지 못했기 때문에 들었던 경보음이었다.
아직 사람들이 뛰쳐나오진 않았다. 그가 제일 처음 나온 사람이었다.
정신없이 숨을 고르며 시간을 확인하려는 그의 뒤를 대형 산타페가 덮쳤다.
[26일 1:30 a.m.]
형사는 사거리 앞 쓰레기통에서 담배를 물려다가 후배의 눈치를 보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화재경보기는 고장이었고 그의 뒤를 이어 나온 오피스텔 주민들이 그를 덮친 산타페와 그 밑에 깔린 그를 발견하고 바로 신고를 했다.
삼거리에서 신호를 받은 차가 좌회전 하지 않고 그대로 직진해서 일어난 사고였다. 운전자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피해자는 병원으로 옮긴 후 1시간 반 만에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차량은 자율주행 모드였고 인공지능의 순간 인식 장애로 인해 일어난 사고였다. 여기에 운명 예측 프로그램이라니 여러 가지 이슈되기 좋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힌 사고였다.
“선배님. 선배님 벌써 기사가 20개나 떴어요.
내일 오전에는 이 기업에서 인공지능이 어떻게 이 사고를 예측할 수 있었는지 기자회견 할 거라는데요?”
자신의 현장에 대한 세상의 관심에 흥분해서 말하는 후배를 보며 형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와 선배님 사람들 반응이 장난 아니에요.
댓글에 인공지능이 사람의 운명을 모두 예측하는 시대가 왔다, 승률 100%의 무당이 나타났다 난리라고요.”
“김형사.”
“이 사람도 오늘 차라리 출근 했으면 이런 일 없었을...”
“그 시스템이 사고를 정말 예측했다고 생각해?”
“네?”
“이제 인공지능이 빅 데이터를 분석해서 한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다는 생각 안 들
어?”
형사는 갖고 있던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정부가 이 인공지능을 국가 운영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기사를 읽고 난 후 일말의 의심이 들기 시작한 때에 그의 폰으로 온 문자를 떠올렸다.
가입한 적도 없는 시스템으로부터 온 문자.
“24시간 뒤 당신은 사망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