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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치킨 Oct 10. 2019

내일일기 #4. 존재의 이유_2

인공지능 활용법中

“하음..”


김씨는 오늘도 파란색 네모난 부스 앞에 앉아 하품을 재꼈다. 평일 오후는 언제나 이렇게 한량이었다. 그는 무릎만한 낚시 의자를 부스 앞에 펴놓고 가을바람을 느꼈다. 그러곤 자신의 구역을 둘러보았다. 2차선 길 양쪽으로 그어진 하얀색 칸 안에는 듬성듬성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건너편은 그래도 빽빽했지만 한 블록 차이로 자신이 있는 이곳은 한량이었다. 저쪽은 그래도 시가지에 들어가는 마지노선이었고 고작 50발자국도 안 되는 이곳은 약간 변두리 취급을 받았다. 사실 그 덕분이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구역과 다른 건너편 구역의 차이점은 주차된 차량의 수 뿐만은 아니었다. 건너편엔 이 파란색 부스가 없었다. 그 대신 주차된 차량 옆으로 허리 높이만한 기둥들이 일렬종대로 꽂혀 있었다. 일명 주차정산 자동화 시스템이었다. 처음엔 참 쓸데없는데 돈 쓴다 싶었는데 어느새 이 지역에서 그의 구역만 남았다. 모두 저 기둥에 점령당했고 유일하게 기둥이 꽂히지 않은 구역이었다. 


‘그것도 다음 달까지지만.’


다음달. 1일 그는 해고될 예정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재계약이 안 될 예정이었다. 홀로 남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지금 이 구역도 저 하얀색 기둥에 점령당하리라. 그는 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기지개를 쭉 폈다. 그러곤 다시 의자에 쭈구려 앉아 아까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 막대로 바닥을 끄적였다. 


그래도 한 때는 이 지역에서 잘나가는 공업사 직원이었다. 지역 소비 기반을 지탱하고 있던 공장 직원이었는데 그때는 기세가 정말 대단했었다. 공업사 이름이 딱 박힌 점퍼를 입고 동료들과 시내를 나서면 식당 주인이든 노래방 주인이든 나서서 그들을 안 쪽으로 들이려 애썼다. 한 달에 한번은 회식비로 거나하게 술과 고기를 먹었었다. 집에도 대기업 사무직 남부럽지 않은 월급도 갖다 줬었다. 몇 년 전 외국인 노동자가 대거 들어왔을 때에 첫번째 위기가 있었지만 그 위기를 넘긴 뒤에는 적어도 퇴직 때까지 그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기 아저씨. 정산이요.”



까만색 세단 주인이 경적을 울리며 불렀다. 그는 얼른 손을 털어버리곤 정산기를 들고 쪼르르 달려갔다. 



“4500원입니다.”


“여기요. 나머지는 팁이예요.”



오천 원을 탁 던져주고 가는 그 차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허리춤에 돈을 갈무리해 넣었다. 자신도 저런 허세를 부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싶었다. 예상치 못하게 일찍 찾아온 그의 초라한 모습. 2년 전 예상치 못한 해고를 당하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그 때 자신이 밀린 건 동남아 노동자도 조선족 노동자도 아닌 기계 때문이였다. 


사장이 자동화기기를 들인다고 했다. 지금도 반 자동화였지만 이제 사람이 아예 필요 없는 완전 자동화기기를 들인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들을 향해서 무릎을 꿇었다. 그걸 들이지 않으면 회사가 망한다고 했다. 주 납품업체인 혼단 자동차에서 그 기기를 들이지 않으면 경쟁 입찰을 붙여 다른 업체로 납품이 넘길 수도 있다고 했단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지.’


데모도 참 많이 했고 부당 해고로 노동청에 신고도 했다. 하지만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집회로 다들 뜻을 모아 서울에 모였다. 두달간의 농성이었다. 그 농성에서 한 사람이 분신자살을 했다. 자신과 반대 조였던 사람이었다. 홀어머니를 모셨었는데 병원비가 없어 전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 불길을 자신은 바로 앞에서 봤다. 하늘 높이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이 농성이 집회가 그리고 자신들이 당한 이 상황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깨달았다. 



정부에서는 그제 서야 움직였다. 언론과 국민의 여론이 집중되자 우리들과 같이 자동화 기기로 인해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을 향한 지원을 하고 해당 사업장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내렸다. 하지만 그 사람의 희생 덕분에 얻은 성과가 아니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더 이상 존재의 이유가 없는 삶에서 스스로 떠난 것뿐이었다. 


정부가 움직이고 각종 지원 대책을 쏟아 냈지만 정작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장에서 수십 년간 반복된 일만 해왔기에 코딩이란걸 가르치는 직업교육을 따라갈 수 없었다. 자동차 엔진 조립부에서 15년간 일해 왔지만 할 줄 아는 건 기계의 조립 단위를 맞추는 일 밖에 몰랐다. 부품이 어떻게 생긴 지는 봐 왔지만 그 부품이 자동차에서 어떤 원리로 어떻게 움직이는 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아빠.”


자신의 어깨를 치며 나타난 딸이 베시시 웃어보였다. 

방학이라 잠깐 내려 온 딸이었다. 

못 본 새에 더 야윈 모습으로 나타난 딸이었다. 



“왜왔어. 저녁 되면 날씨 추워지는데.”


“커피 배달하러 왔죠.”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식당 앞에 놓여 있던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다가 그의 옆자리에 놓으며 딸이 명랑하게 말했다.



“오늘은 얼마나 벌었어요?”


“공쳤어. 하루 일당도 못 벌었어.”


“이러다 공단에 혼나겠다. 그치.”



편의점에서 산 천 원짜리 커피를 건네며 딸이 장난스레 말했다. 

그도 그 커피를 받으며 웃었다. 

딸의 얼굴만 보면 아무리 고단해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 요상한 기계에 또 밀리게 생겼잖니.”


“아이구 아빠도. 참.”



커피를 건네곤 딸은 아빠의 팔에 팔짱을 끼며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오늘따라 딸이 자신을 더 파고들었다. 그는 그런 딸을 보며 제 하고 싶은 대로 놔두었다. 



“괜찮죠 아빠? 아빠 막 힘들고 그러면 얼른 그만둬.”


“갑자기 왜이럴까. 이것도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아빠 괜찮아. 안 힘들어. 

우리 딸이 이렇게 마중 나와 주는데 뭐가 힘들어.”



그가 말 하자 딸은 괜히 그의 팔을 당겨 제 얼굴을 슬쩍 닦았다. 

그 모습을 봤지만 짐짓 모르는 체 해줬다. 



“있잖아 아빠. 성구 아저씨 오늘 죽었대. 집에서 술 먹고 자살했대.”



눈물이 약간 섞인 딸의 말을 듣고 머리가 멍해졌다. 공업사 사장이 죽었다. 결국 기기를 들이면서 낸 빚과 정부의 벌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회사를 훈단 자동차 회상 사위에게 팔아넘긴 게 저번 달이었다. 그런 뒤 소식이 끊겼더니 결국 이렇게 소식이 돌아왔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꼭 호강시켜 줄게요. 그러니까. 아빠. 아빠랑 엄마는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야되. 알았지?”



그는 대답 대신 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만약 딸을 두고 생을 포기할 거였으면 아마 이 년 전 그 불길에 자신도 몸을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어도 이 세상에 딸과 아내 둘만 남겨두고 떠날 순 없었다.



“생활비는 괜찮어?”


“에이 아빠도. 나 이번에 과외 하나 더 들어와서 괜찮아요. 내 생활비랑 등록금은 걱정하지를 말어.”



예의 그 웃음으로 딸이 다시 베시시 웃어보였다. 딸이 대학을 가겠다고 결정했을 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하지만 딸은 어려운 집안 사정에 대학을 간 자신을 이기적이라며 자책했다. 아마 못 배운 자신이 이렇게 기계에 밀려나는 모습을 보며 딸은 결심 했을 것이다. 딸은 전혀 이기적이지도 더 이상 어리지도 않았다. 


그는 그의 딸의 손을 토닥이며 건너편 건물에 비친 노을을 바라봤다. 


오늘도 가을이 지고 있었다. 

이제 곧 춥고 긴 겨울이 다가 올 것이다. 

그가 밀려난 이 세상도 그리고 이렇게 밀려나게 만든 이상도 누가 만든 건지. 누구 좋으라고 만든 건지. 

그는 그에게 하나 남은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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