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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정 Aug 06. 2015

기죽으면 어때서?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은 그저 농담으로 넘기기엔 뼈아픈 말이었다.  부러워하는 게 지는 일이라면 나는 이미 골백번도 더 졌고, 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질 것이므로. 어쨌든 나는 부러운 것 앞에서 입꼬리를 올리고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부러우면 지는 거야'는 말을 하곤 했다. 상대에게 절대 부러움을 표출하지 않는 건, 상대의 기분을 우쭐하게 만들지 않고 싶어서였고,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이익이 될까마는 여하튼 그렇게 도도한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나는 지지 않고 '이겼다'고 생각했다.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켰으니 진 건 아니라고 나름대로 판단한 것이었다.   



 부럽다고 칭찬하지 않음으로써 어쨌든 나는 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 알량함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은 곧, '너무 너무 부럽지만 티를 내지 않을 거'라는 말이 었는데, 웃기게도 그런 선언은 내뱉어지는 순간 나는 네가 무척이나 부러워 죽겠다, 는 말과 같아졌다. 내가 갖고 있지 않으며 동시에 열망하는 것 앞에서 솔직하지 못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나는, '지지 않고'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대신 내 안의 열등감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부러운 마음이 들지만 그것을 온전히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는 단순한 '질투'와는 조금 다른 차원의 것인데,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사실 나는 '상대가 자만하는 모습이 꼴보기 싫어서' 가 아니라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 앞에서 '주눅 드는 내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부럽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주눅 들고 기죽으면, 그러니까 기가 죽는 순간의 내 모습을 스스로 인정해버리면 '나'라는 자아가 무너질 것만 같았기에 그것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다. 기죽은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초라하고 무쓸모의 인간으로 보였으므로.  



 결국 내게 상처를 입힌 건 내가 욕망하는 것 자체도 아니었고, 내 욕망의 대상을 가진 상대방의 자만심도 아니었다. 정작 나를 아프게 한 건 기죽는 나를 절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또 다른 나'였다. '기가 죽거나 주눅 드는 나'는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자아가 아녔으므로 기를 쓰고 부러운 마음을 억눌렀던 것이다. 주눅 드는 일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는 참으로 끈질겼고 고집스러웠으며 지독했다.



 어찌할 방법 없이 괴로워하며 열등감만 키워가던 나는 이 완벽함만을 지향하는 '나'와는 결코 평화롭게 지낼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고서는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주눅 드는 게 왜 나쁜 거지? 기 죽으면  어때?라고. 무언가 부러운 순간, 아주 완벽하게 기 죽는 나를 인정해버리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부럽지 않다, 고 자기기만을 하는 것보다 예쁘구나, 멋지구나, 똑똑하구나, 참 잘하는 구나, 능력이 뛰어나구나, 나는 참 네가 부럽다, 는 말을 검열 없이 하는 나는, 그것으로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졌다. 내가 허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자아의 모습이 다양해지면 다양해질수록 훨씬 솔직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었다.



 눈을 조금만 돌려도 부러운 것이 넘쳐 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기죽을 일은 죽을 때까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을 터. 그때마다 나는 부럽지 않다고 자기기만을 하며 기죽는 내 모습을 미워할 자신이 없다. 상처 입으며 지키는 자존심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언젠가 내 아이에게도  이야기해줄 것이다. 주눅 들어도 괜찮아. 기죽어도 괜찮아. 그렇다고 해도 너는 무척이나 사랑스럽단다,라고. 기죽는 내가 한없이 초라해 보여 먼지가 되어 소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지라도, 나는 기꺼이 주눅 들어 등을 말고 굴러다닐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얼마 후엔 잘난 내가 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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