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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정 Aug 08. 2015

나아지고 있는 게 없는 것 같아 답답한 누군가에게-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과거인 한 시기의 이야기.


뭔가 하는 것 같긴 한데 나아지고 있는 게 눈에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던 나날들이었다.


무더운 여름에 뜨거운 아스팔트 길 위에서 제자리 걸음만 주구장창 하고 있는 느낌에 한숨만 푹푹 나오곤 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어떤 문제든 닥쳐오면 생각만큼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해 전전긍긍하지만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도, 적절한 이야기와 문장이 명치를 찌르며 다가오곤 했다.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머리를 명징 하게 밝혀주는 글과 조우하는 순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땀 뻘뻘 흘리며 열심히 걸어가고 있지만 도무지 목적지에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런 날이면, 다이어리에 꼭꼭 눌러 적은 이 글을 온 마음을 다해 읽었다.


아침이든 밤이든, 일종의 의식같이. 





#


보지는 않고 제목만 대충 알고 있던 <메리 대구 공방전>에 나왔던 에피소드라 한다.


남자친구의 사법고시 뒷바라지를 했는데, 고시에 패스하자마자 떠나 버린 그 사람의 축가를 부르게 된 메리.


3년 동안 그 남자를 기다렸는데, 그는 메리에게 넌 변한 게 하나도 없다며 발전 없는 너를 누가 좋아하겠냐며 독설을 한다.


그때 그 남자에게 메리가 건넨 말. 



"지금 당장 눈 앞에 변한 모습이 없지만  마음속에선 자랐을 거야."


"나 3년 동안 하루도 노래 연습 거른 적 없고, 뮤지컬 오디션도 빠짐없이 다 봤어.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뭔가 내 안에서 이만큼 키가 컸을 거야. 꼭 취직을 하고 통장잔고가 늘어야 발전한 건 아니야."






# 


인생이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이라 하고, 그것을 그래프로 표현해야 한다면 나는 계단 모양의 선을 그을 것이다. 


시간과 노력에 따라 주욱 올라가는 그런 정비례 그래프 말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구간이 있는가 하면 갑자기 쑥 솟아오르는 구간이 있고 그 후엔 또 다시 지루한 구간이 반복되는 계단 모양의 그래프 말이다.


지난 한 시간을 견디고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쑥- 자라고, 또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티 나지 않지만 계속 발을 굴려야 하는 성장의 과정은 답답하지만, 그래서 정직하다. 


학창시절 성적을 올리는 과정에서도, 또 지금 무언가를 배워나가는 과정에서도 그 '계단의 법칙'은 통용되었다. 적어도 내게는.


성장의 형태가 원래 그러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정말 중요한 건, 손에 쥘 수 있는 성과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내가 계속 손과 발과 머리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루하고 지난 한 평행의 시간에도 미세한 변화는 분명히 있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한, 어제보다 오늘 아주 미미하게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고 있었던 거다. 


너무 작고 작은 변화라 그 누구도 몰랐을 뿐-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갈팡질팡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메리의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


통장잔고가 늘어니진 않았더라도, 당신 안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자라고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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