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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정 Aug 22. 2015

나태나 회피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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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의 개념을 접하고 가장 혼란스러웠던 때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자는 멋진 이야기가 나의 나태나 회피, 안주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회의가 들었던 순간이다.


부족하고 단점 많은 나를 있는 그대로 어여삐 여기는 것이 자존감을 갖기 위한 첫 걸음인 건 분명 맞지만 그것이 나의 게으름을 그대로 방치하게 만드는 마취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과 감정에 대해 더 알고 싶고, 자존감을 갖고 싶은 이유는 그런 건강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일상에서 좀 더 많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함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나 자신을 방치하게 만들거나 안주하게 만든다면 자존감을 갖지 않는 것만 못하지 않느냐는 고민이 생기면서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자존감의 개념을 확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행복한 삶, 지금보다 더 발전하고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전제가 자존감임을 고려한다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라는 마음가짐에 구체적인 행동이 더해져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낮은 자존감의 원인 중 하나로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괴리를 꼽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자아는 저만치 높은 곳에 있는데 현실의 내가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자존감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자존감을 위한 행동의 필요성을 이 지점에서 분명히 느꼈다.


그래서 '조건 없이 나를 살아하라'는 자존감의 명제가, '더 나아갈 수 있음에도 그 자리에 머무는 나태한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쓰인다면 그건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방치하는 것이라고 나름의 명확한 기준을 세웠다.


행동이 더해지지 않은 자아존중감은, 자신의 발전 가능성을 오히려 죽여버리는 독약이다.





내가 가장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순간은 '자신을 스스로 한심하게 만들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였다. 


스스로를 한심하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은,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늪과 같았다.


끊임없이 자신을 미워하면서도 도대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자괴의 늪에 빠지면 나를 사랑한다는 자존감의 개념은 공허한 외침이 되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리곤 했다.

결국 스스로를 한심하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행동과 통제감이 필요한 것이었다.


나의 단점을 껴안겠다는 말이 손쉬운 위로로 전락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여기서의 적절한 행동이란, '내가 되고 싶은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괴리를 조금씩 좁혀나가고 그 과정에서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며 노력하고 있는 내게 박스를 쳐 주는 것을 뜻한다.


이때의 노력은 반드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 이어야 한다. 목표를 위한 행동이 아주 거창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지금 당장 여기서 할 수 있는 행동을 반복하고 내 생활을 내 의지로 적절히 통제하고 있다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 과정 자체에서도 긍정적인 기운을 얻을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설령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최선의 노력을 쏟았다면 '실패'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에게 가혹하게 대하지 않을 것. 


이것이 마음가짐과 행동을 고루 갖춘 건강한 자존감의 모습일 테다.


자존감을 기르는 건,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자가발전용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는 것과 같다.


열심히 내 발로 페달을 밟을 때에만 전기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자존감도  나은 내가 되려고 노력할 때 생기는 것이다.







결국 자존감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다.


연인, 부모와 자식 관계, 형제 관계 등 세상의 모든 관계에서 노력이 필요하듯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적절한 노력과 행동으로 우리는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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