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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정 Aug 27. 2015

 '나는 괜찮아'의 마법

                                                                                                                                                                                                                                                    

이유도 모른 채 아픈 손목에 붕대를 칭칭 감고 다녔던 적이 있었는데, 놀라는 지인들 앞에서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 이거? 괜찮아. 좀 지나면 괜찮을 거야.


그건,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기도 했지만 실은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었다.


참고 견뎌야만 한다는, 마법의 주문.




그러다 어느 날 밤, 잠깐 들린 편의점에서 알바생이 툭 던진 한마디.


많이 아프신가 봐요.


별거 아닌 그 말에 나는 심장의 바닥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눈가에 핑 도는 물기도. 




알바생의 말과, 서늘해진 심장을 품고 돌아와서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웃는 표정으로 무수히 괜찮다고 말하고 다녔건만, 별거 아닌 말 한마디에 그토록 쉽게 무너질 마음이었다니.


허망함이 온몸을 휘감았고 그간의 생활이 마구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덮고 덮은, '사실은 괜찮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처음으로 생각해 보며 자기연민에 몸서리 치기도 했던 밤.


그날 이후부터 내 주변의 색이 달라졌고, 내 세상이 조금 기울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은 거다.


나, 괜찮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극도로 예민하면서 매사에 둔했다.


이 무슨 모순 이느냐 하겠으나, 진짜 그랬다.


조그만 스트레스에도 몸은 쉽게 화를 냈으나 알아차리지 못했으므로 병을 키웠고 쉽게 상처받는 여린 마음이었으나 그 균열들을 섬세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예민하면서도 이토록 둔할 수 있었던 것에는 '괜찮아'라는 말의 마법 덕분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아.

이게 별거야? 괜찮아.

그래서 뭐 어쨌다고? 괜찮아.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참고 견디는 것'의 미덕에 함몰되어 어디까지가 견뎌야 하는 한계인지, 그 적정선을 몰랐던 거다.


그저 묵묵히 참고 그 순간들만을 넘기면 진짜 괜찮은 줄 알았다.




찢어진 상처는 꿰매야 하는 것이거늘, 연고조차 바르지 않고 반창고 하나 덜렁 붙이고 낫기를 바라는 꼴이었다.


그렇게 '괜찮아'라는 손쉬운 반창고로 붙인 상처는 안으로 안으로 곪아갈 수밖에.


나는 당장 따갑고 아프더라도 소독약을 부어 닦아냈어야 했고 얼마나 다쳤는지 깊게 깊게 들여다 보았어야 했다.


대책 없이 덮어놓기만 한 상처는 언제고 한 번은 터진다는 사실을 나는 왜 몰랐던 것인가.







괜찮아,라는 말은 알고 보면 참 무서운 말이다. 


상처를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상처가 곪아터져 썩는 냄새가 나는 데도 진짜 괜찮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그건 철저히 왜곡된 긍정이다.


'강함, 밝음, 긍정만이 옳은 가치로 칭송되는 세계에서는, 그렇지 못한 자들은 '척'이라도 해야 마땅하며. 그 '척'이 자신마저 속일 정도로 강력해야 한다.


이렇듯 우리는 삶의 꽤 많은 부분에서 '괜찮습니다', '참을 수  있습니다'를 연발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긍정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아니 나 안 괜찮아,라고 선언한 후 폭풍같이 흘리는 눈물이 더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나는 너무 큰 대가를 치르며 배웠다. 




괜찮지 않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그리고 나서 눈물 한 바가지 흘릴 수 있는 자세를 언제나 기억하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울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꼭꼭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묻는다.





너, 괜찮은 척 하는 거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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