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이해가 되지 않는 남자들의 행동을 이야기하자면 참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이해하는데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렸던 건 그들의 '인형뽑기에 대한 집착'이었다.
내 동기들은 (특히 술만 마셨다 하면) 길거리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인형뽑기 기계를 차마 지나치지 못했다.
그들이 알록달록한 인형이 가득한 기계 앞에서 생애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동안 나를 포함한 여자 동기들은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저 의미 없는 일을 왜 하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기계 속 인형들은 집게를 요리조리 잘도 피했고 설사 집게에 잡혀 올라온다 한들, 골인지점 바로 앞에서 보란 듯이 떨어지곤 했다.
어쩌다 운이 좋아 조그만 인형 하나를 뽑기라도 하는 날에는 대학가 거리가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러댔는데, 그 환희도 잠시.
그 인형은 곧 여자 동기들의 손에 쥐어지거나 누군가의 자취방에 처박혀 사람의 눈길 한 번 받을 날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집게를 몇 번 움직이는 대가로 몇 천 원 혹은 몇 만원까지 투자를 해야 하고, 원하던 목표물을 손에 넣는다 할지라도 투자에 비해 그 결실이 마뜩잖은 일.
내 눈엔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었다.
그러나 진짜 어리석은 이는 나였음을, 뒤늦게 깨닫고야 말았다.
이익이나 성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서야 알았던 것이다.
인형을 가지는 게 목표가 아니라 목표에 집중하고 콩닥대는 가슴을 부여잡는 과정 자체에서 오는 기쁨을 이해했더라면 나는 그들에게 한심하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의미 없는 일에서 오는 짜릿함과 소소한 행복으로 내일 또 찾아올 빡빡한 전공수업 시간을 견뎠겠지.
의미 없는 것 같은 일에,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에 우리가 자주 우울해지는 건 아마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의미'와 '아무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만 이해하는 실수를 아주 많이 범하고 하니까.
하지만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 혹은, 눈에 보이는 성과로 이해되는 것들로만 세상이 이루어진다면 그것 또한 암울하기 짝이 없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에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했던 일들이 앞으로의 삶에 큰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그런 일들은 지금도 내 생각과 글에 큰 영향을 미치며 기름진 밑거름이 되어주고 있다.
내적인 힘을 기르고, 언젠가 꽃 피울 수 있는 영양분을 응축하는 시기는 대부분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을 할 때였다.
수능 시험을 치고 난 직후에 그랬고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던 고시를 포기하고 난 뒤 빈둥거릴 때가 그랬다.
성과나 결과만을 바라보며 어떤 일에 매달리는 삶만큼 불행한 것도 없다.
그렇게 착취만 당하는 땅에는 결국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다는 사실.
이제는 '의미'를 손에 쥘 수 있는 결과에만 두지 말고 과정에 놓고 그 순간순간을 즐겨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