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고3 시절, 그 시기를 꾸역꾸역 이겨내기 위해 가장 많이 했던 것은 이미 대입이라는 전쟁을 치르고 당당히 대학생이 된 선배들의 합격 수기를 읽는 일이었다.
부족했던 과목의 공부 요령을 터득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실은 나도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여 꼭 그런 수기를 쓰고 싶다는 열망이 수기를 읽는 일에 더 집착하게 만들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나서 나는 이렇게 이겨냈노라 조언하는 글들은 언제나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고, 나중에 내가 이런 글을 쓴다면 어떤 내용으로 채울 수 있을까를 미리부터 김칫국 마시며 고민하기도 했다.
수능을 치르기도 전에 합격 수기를 구상해보는 일은 김칫국 마시는 일이 분명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숨 쉴 틈도 없는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버팀목이었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한계에 가까워졌다 생각될 때마다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될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그 이야기가 진정성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생각한 극복의 방법들을 최선을 다해 실천했다.
어렵고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기분이 조금 꼬이거나 하고자 했던 일이 마음 만큼 되지 않을 때면, 나는 언제나 타인에게 조언하는 상황을 떠올리곤 한다.
미래에 비슷한 상황을 겪고 힘들어할 누군가에게 나는 이렇게 했더니 좋더라, 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상상은 내가 겪고 있는 일을 한 발짝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자신의 연애사는 치욕스러울 만큼 지질하지만 남의 연애에 대해서는 척척박사인 사람들처럼. 타인에게 조언하기란 원래 그런 거니까.
막막하고 불안하며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상황에 있다면 가상의 타인을 위한 조언자가 되어보기를.
나도 겪어보았노라고, 그때 나는 이러 이러하게 대처했었다고.
그러고 나서 남는 일은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 조언에 진정성을 담고 싶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