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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떼 Jun 12. 2021

7호선 일기

출근길 대림역 환승 구간은 올림픽 메스 게임을 연상시킨다. 2호선에서 내린 사람들과 7호선에서 내린 사람들이 반대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크로스 하며 흩어진다. 분명 대각선 방향이라 충돌 나야 하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매일 연습한 것처럼 충돌 없이 질서 정연하다. 역시 단체생활의 강국인가 싶다.


#1

바쁜 사람들 속 180cm 건장한 남자가 바쁜 걸음으로 나보다 앞서 나간다.

말쑥한 옷차림과 서류가방이 사무직을 연상시킨다. 머플러, 아우터, 주름 없는 구두 등이 일자로 잰 듯이 깔끔하게 일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는 아마 은행원이나 회계사무실 직원일까 싶다. 아니면 교대 쪽의 법조 사무실도 괜찮을 것 같다. 혼자 시답지 않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말쑥했던 그가 갑자기 호랑나비가 되었다. 계단도 내리막길이나 빙판길도 아니었는데 그는 혼자 제발에 걸려 호랑나비처럼 춤을 추었다.


맙소사...

입가에 실소가 터진다.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간신히 밖으로 못 새어 나가게 막았지만 눈은 계속 웃고 있었다. 제발 그 남자가 뒤돌아 나를 보지 않게 해 주소서. 출근길에 호랑나비는 참을 수 없는 복병이다


#2.

또 다른 출근날이었다. 땅굴 같은 환승 에스컬레이터의 끝에 다다를 때쯤 앞에 있던 중년의 여성이 휴대폰 화면을 보며 서있다. 화면에 보이는 사람이 어린이라 손주인가 싶다. 손주 사랑은 역시 할머니인가 훈훈함을 뒤로하고 나의 갈길을 재촉하며 추월하려는데 가까이서 본 휴대폰 화면의 어린이가 이상하다. 화면은 뽀얗고 귀여운 티커와 함께 여성이 입은 옷과 똑같다.


어린이는 그녀였다. 사진 앱의 기능으로 중년 여성은 어린이 모드로 셀카를 찍고 있었다. 정말 심심할 틈이 없는 출근길이다.


#3.

지하철에서 20분은 적당히 서서 갈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출근길이라면 다음 역에 내릴지라도 2분만이라도 편히 앉아서 가고 싶다. 마침 내가 서 있던 앞자리 승객이 내려주면 로또 맞은 기분이다. 그날도 마침 내 앞에 앉아 있던 승객이 일어나면서 자리가 비어 앉으려는데 분명 내 자리였는데... 어디선가 쏜살같이 나타난 다른 승객이 내 자리에 앉았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스러움보다 놀라웠다. 더 놀라운 건 수녀님이었다... 와우,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피곤하고 쏜살같을 수 있지, 암,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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