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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go Mar 04. 2021

잠시 들어간 현실 세계

인도 리시케시 생활 이야기

사실 나는 요즘의 생활이 참 좋다. 창이 넓은 방은 깨끗하고,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푸르른 산이 보인다. 물론 산 바로 아래에는 옹기종기 호텔 건물들이 몰려 있기는 하지만 눈을 높여 산과 하늘을 바라보면 그만이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얇은 요가 천 매트를 깔고 가볍게 몸을 푼 후에 아래층에 있는 공동 부엌으로 가서 간단한 식사 거리를 만든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한 후 책상에 앉아 글을 조금 쓰거나 딴생각을 하기도 하고 침대에 비스듬히 드러누워 있기도 한다. 그러다가 저녁 요가 수업을 다녀오면 하루가 지나간다.


물론 삶을 살아가는데 고민이 없겠냐만은 우선은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고 먼 미래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있는 중이다.


어제는 오래간만에 내가 인도 리시케시에서 처음 요가를 배웠던 선생님 집에 가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숙소에서 나가서 한창 공사 중인 흙더미를 지나면 좁은 골목이 나오기 시작하고 곧 차도로 연결되며 오르막 길이 시작된다. 한가로이 서 있는 소들과 길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거리의 강아지들을 지나치면 차들이 많이 다니는 큰 도로가 나오는데 이곳을 건너서 마을 주민들이 사는 동네로 들어가게 된다.


요즘 리시케시는 골목길 바닥 공사가 한창인데 역시 이 길도 닦고 있는 중이라서 모직포를 길 위에 많이 깔아 놓고 있었다. 사이사이 깔린 모직포를 밝으며 걸어가는데 앞에서 선생님이 내려오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며 야채를 사러 같이 가자고 한다. 사실 점심 식사 후에 같이 야채 시장에 가기로 했기에 조금은 의아한 마음으로 따라나섰고 선생님은 오늘 피망 커리를 해 먹자면서 작은 봉지의 피망을 샀다. 피망만 넣은 커리라는 것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우리는 작은 봉지의 피망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선생님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또 다른 요가 선생님을 만났다. 이 분은 요가원 안에 카페와 숙소까지 마련되어 있으나 요즘 때가 때이니만큼 안에는 아무도 없다면서 약간 힘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 분과 헤어지며 인사를 나누고는 우리는 요가 선생님  집으로 들어갔다. 정해진 시간에 선생님 집에 가면 따뜻한 가정식이 이미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선생님은 식탁으로 피망을 가져와 자르기 시작했고, 시간 약속을 중요시하는 나는 약간 뾰루뚱한 기분이 되어 바라보기만 하였다. 나의 얼굴 표정을 보고는 그렇게 배고프냐고 물어보면서도 걸려 오는 전화를 받느라 갑자기 놀러 온 동네 청년이랑 이야기하느라 밥 먹기 전에 차 한잔 해야지 하며 차를 만드느라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만 있었고 난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앉아 있었다.


선생님에게 전화가 연거푸 걸려왔는데 알고 보니 현재 수입이 없어서 선생님의 어머니가 돈을 보내려고 하는데 송금이 안되어서 계속 전화를 한 것이었다.


뒷마당에 조용한 요가원과  위층에는 손님용 방으로 3개가 마련된 선생님 집은 비어 있은지 꽤 오래되었다. 작년에 인도의 락다운 기간이었던 6개월 동안은 움직일 수 없었던 여행자들이 오래도록 묵고 있었는데 락다운이 풀린 작년 가을에 대부분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고 한다.


작년의 락다운 기간의 선생님은 조용한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갠지스강으로 나가는 산책 그리고 요가 수련과 직접 만드는 음식으로 하루가 충만하게 지나간다고 했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장기적으로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금은 수입이 없어서 조금 곤란한 상황이라고 했다. 매달 나가는 아들의 학비와 기본적으로 드는 생활비가 이제는 많은 부담이라고 하면서 피망과 양파, 토마토만 넣은 간단한 커리와 렌틸콩을 쌀과 함께 죽처럼 만드는 키처리를 접시에 담아 내왔다.



놀러 온 청년은 이미 아침을 많이 먹어서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지만 곁에 앉아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20대 초반의 훤칠한 키에 단단한 몸을 하고 있는 그는 아쉬탕가 요가를 가르치는 요가 선생님이다. 하지만 그 역시 학생이 없어서 매일 혼자 수련을 한다면서 리시케시에는 요가 선생님이 너무 많다고 했다. 모두가 너무 똑같은 일을 해서 모두 다 먹고살기가 힘들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내가 사 온 파파야를 잘라서 먹고 있는데 또 다른 손님이 왔다. 그는 래프팅을 하는 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역시 일이 없다고 했다. 요즘 주말에는 인도 여행자들이 꽤 많이 와서 래프팅을 하고 있지만 리시케시에는 역시 래프팅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일을 맡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선생님과 함께 가기로 했던 마켓은 다음에 가기로 하고 혼자 나와 숙소를 향해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그동안 내가 혼자 방에 머물며 조용한 시간을 보냈던 생활은  현실 세계에서 많이 동떨어진 시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돌리면서 생각을 멀리 보내버렸다. 인도에서 할 일이 있을까 해서 이 시기에 인도로 들어왔지만 지금은 무언가를 하기에는 쉽지 않은 시기이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하고 있는 하루하루의 생활을 당분간은 그대로 이어갈 것이다.


잠시 들어가 본 현실 세계는 생각보다 너무 현실적이었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도 한동안은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현재 먼 미래는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흐릿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잘 보낸다면 흐릿하게만 보이는 미래는 곧 현재가 될 것이고 그 현재가 모여서 좋은 미래로 완성되지 않을까.


리시케시 갠지스강


다음날 아침에 음식을 만들려고 아래층 부엌으로 내려갔는데 위층에 머물고 있는 일본 여행자 호시도 마침 요리를 하려고 내려왔다. 나는 어제 사온 쌀국수로 양배추와 당근을 썰어 넣은 볶음 쌀국수를,  호시는 우동 국물을 만들고 우동을 직접 반죽하여 잘라 넣은 일본식 우동을 만들었다. 각자의 음식을 다 만들고 호시가 내게 물었다.


"오늘은 뭐할 거야?"

"할 일이 없는데?"라고 대답하니 녀석이 호탕하게 웃어재낀다. 그래서 너는 뭐할 건데 라고 물으니,


"음... 나는 오늘 우체국을 갈 거야. 그동안 쌓인 겨울옷을 일본으로 보내야겠어. "


우리는 이렇게 특별히 할 일은 없지만 인도 리시케시에서 건강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리시케시의 여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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