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맞은 특별한 새해

인도 보드가야에서 맞이한 새해와 또다른 바램

by Mango

인도 보드가야에 위치한 모하메드 천막 레스토랑에 들어간 순간 난 왠지 모를 강함 끌림을 느꼈다. 따스한 공기, 느슨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여행자들 , 그리고 웃으며 일을 하고 있던 인도 소년들, 게다가 천막 안쪽에 위치한 부엌에서 나온 식당 주인이자 요리사인 청년 모하메드. 한순간 그냥 그 모든 것에 반해 버렸다.


그리고 순간 그곳에서 같이 일하며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염원은 이루어졌다.



2005년 12월 31일 보드가야의 천막 식당 모하메드 레스토랑에서 소박하지만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식당 안에 연말을 위한 화려한 장식은 없었지만 입구에 걸린 티벳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사진과 은은히 울리는 인도 음악이 화려한 장식을 대신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모하메드는 그동안 자신의 레스토랑을 사랑해준 단골손님들이자 친구들을 위해 저녁 만찬을 준비했고, 그들에게 행복한 초대장을 보냈다.


식당 중앙 테이블엔 투박한 인도 철제 솥이 여러 개 놓였고 그 안에 방금 만든 여러 종류의 인도 커리가 들어 있었다. 식당의 한 구석에서 영국 친구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 환한 얼굴의 행복한 미소를 한 여행자 친구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모하메드는 그들을 환영했고, 영국친구의 기타 반주와 함께 하는 은은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식탁에 둘러앉아 모두들 음식을 맛보았고, 끊임없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모하메드와 나는 천막 안 부엌으로 들어가 같이 일을 하고 있는 소년들과 함께 손으로 맛있게 커리를 먹었다. 그날 저녁은 일하는 사람들이 없는 모두가 함께 즐기는 시간이었다. 나는 새해가 시작되는 날인 1월 1일에 그곳을 떠나야 했지만 그해의 마지막 날 만큼은 그저 우리들만의 성대한 파티 시간을 즐겼다. 떠남의 슬픔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오면 되는 것, 떠남의 슬픔을 생각하기보다는 다시 만날 떨림을 기약하고 싶었다.


다음날 동이 트고 나는 특별한 새해 선물을 받았다. 구겨진 신문지에 싸인 무거운 갈색 빵과 해피 뉴 이어가 써진 작은 초콜릿 케이크를. 무거운 갈색 빵은 소중히 내 배낭에 넣었고, 초콜릿 케이크는 함께 일했던 소년들과 나눠 먹으며 새해를 축복했다.


그리고 한동안 지냈던 즐거웠던 그곳을 떠나 바라나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활짝 웃고 있는 애플파이맨과 그의 아들 바블루

모하메드 레스토랑에는 아주 유명한 애플파이가 있다. 오로지 애플파이를 맛보기 위해 레스토랑을 찾는 여행자들도 많은데 막 구운 김이 뿜어져 오르는 애플파이를 가지고 나올 때면 모두 탄성을 지르곤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는 케이크 및 디저트를 팔고 있는 카페가 두어 개 생겼지만 10년 전만 해도 애플파이를 파는 곳은 거의 없었다.


모하메드는 내게 애플파이를 만드는 애플파이 맨을 소개하여 주었다. 큰 키에 온화한 미소가 흐르는 분이었고 나이 지긋한 모하메드의 친척이었다. 내게 공손하게 합장을 하며 인사를 하였다. 그분은 문나라고 불리는 귀여운 얼굴의 사내와 나무장작에 불을 피워 애플파이 반죽이 든 스테인리스 판을 직접 내려놓고 파이를 구웠고 갈색 빵과 윤기가 흐르는 초콜릿 볼을 만들었다. 그들의 작업실은 천막 식당 바로 앞에 있었다. 역시 벽돌로 담을 쌓아 천막으로 지붕을 두른 조그만 공간에서 파이를 만들며 때론 짜이 한잔을 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곳엔 항상 막 만든 파이와 케이크 그리고 초콜릿 볼이 대기하고 있었다. 당시엔 빵을 만들 줄 몰랐던 나는 그들을 항상 존경 어린 눈빛으로 극진히 챙겼다. 그들은 내게 있어 빵의 스승이었기 때문이었다.

겨울 시즌이 아닐 때에 보드가야에 가면 그 애플파이 맨은 순례객이 많은 일본 절 앞에서 오렌지를 짜서 주스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그 앞에서 모하메드와 팝콘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공손히 합장으로 인사를 하며 오렌지 주스를 손에 쥐어 주었다.

그렇게 온화하고 아이처럼 맑았던 애플파이 맨이 하늘로 가셨다는 문자를 받고는 마음이 아팠지만 죽음이란 우리의 운명인걸 어찌하겠는가.

새해가 되면 애플파이 맨이 내게 안겨준 삐뚤삐뚤하게 써진 ' 해피 뉴이어'가 새겨진 새까만 초콜릿 케이크와 갓 구운 무거운 갈색 빵이 생각난다.


귀여운 소년 아닐

아닐은 메인 요리사의 둘째 아들이다. 16세의 아주 성실하고 귀여운 소년이지만 내가 아닐을 만났던 2013년에 그는 결혼을 했고, 2015년 가을 나는 아닐과 그의 어린 신부를 만났다. 콧수염을 덥수룩하게 길은 그는 조금 어른 티가 나고 있었다. 나를 만나기 위해 먼길을 온 아닐에게 감사한다. 매일 석류주스를 만들어주고 커피를 만들어주던 아닐이 어느덧 한 가정을 이룬 가장이 되었구나.


보스라고 불리는 세컨 요리사 마헤쉬

파란색에 꽤 두꺼운 비닐 천막 안쪽에 자리 잡은 부엌은 김을 뿜어 올리며 끓고 있는 주전자 소리 때문에 더 따스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늘 나무와 석탄으로 불을 피우고 있었다.

뒷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어느 사내가 두 어깨에 물 양동이를 들고 들어왔다. 무거운 물 양동이를 두 개나 지고 왔으면서도 얼굴엔 이상해 보일 정도로 웃음이 흐르고 있었다. 부엌과 식당 내부를 막고 있는 커튼 앞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물동이를 내려놓았다. 마른 몸에 아담한 체구를 가진 그는 다른 인도 청년들처럼 그 나이엔 어색한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마헤쉬. 사각의 얼굴에 얼굴에 곰보가 나있고 특이한 목소리를 지닌 그는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물펌프가 있는 곳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날아와야 했다. 수도 시설이 없는 도로 앞에 죽 이어진 천막 식당이라면 어디든지 그렇게 해야 했다.

수줍음이 많은 그는 내가 옆에 앉기만 하면 나를 피했고 곁에 앉아 식사를 하려 하면 소리를 지르며 멀리 떨어져 앉았다. 마헤쉬는 낮은 계급이 살고 있는 마을에 살고 있는데 천막 식당이 문을 여는 겨울 시기가 되면 이곳에서 일을 했다. 그의 사각의 곰보가 피어 있는 얼굴 때문인지 아니면 특이한 성질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미 두 번째 부인마저도 도망갔다고 했고 곧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비밀이 없는 인도라서 그런 건지 천막 식당에 있는 소년들이 이상한 건지 그들은 큰소리로 웃어대며 내게 그의 결혼 스토리를 이야기해줬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를 놀려댔다. 하지만 그, 마헤쉬는 그런 장난을 웃음으로 흘려버리며 또 다른 농담으로 대꾸하곤 했다. 그랬던 그가 어느 해에 어엿한 세컨드 요리사가 되어 있었고 어깨 위의 물 양동이 대신 체크무늬의 근사한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얼마나 큰 웃음을 터뜨렸던가. 곧 그는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주기 시작했고 그 맛 또한 일품이었다. 그의 세 번째 부인마저 도망을 갔고 지금 네 번째 결혼식을 준비 중이지만은 그의 특이한 목소리와 수줍은 눈빛과 미소는 예전과 다름없었다. 나는 친구 모하메드에게 소리쳤다. 다음에 다시 내가 이곳엘 찾아왔을 때 이 근사한 청년이 없다면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겠다고. 그리고 역시 모하메드는 언제나 그렇듯 그러겠다고 했다.

산골 소년에서 요리사로 변신한 파완

파완, 그의 목소리는 높고 조금 방정맞기도 할 정도로 특이하다. 그 역시 빈민촌 마을 출신이지만 2012년에 모하메드 레스토랑에서 잡일을 하다가 요리에 소질을 보여 지금은 세컨드 요리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고, 인도 커리를 만드는 이이다. 요즘 손님들로부터 급칭찬을 받는 요리사이다.




인도 보드가야의 모하메드 레스토랑에서 처음 일한 해는 아마 2005년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2006년일 수도 있다. 2005년은 몇 년간 다니던 인도 전문 배낭 여행사를 그만두고 자유의 몸이 된 해였다. 그리고 나는 함께 일했던 친구와 여행을 떠났다.

우리들은 인도 네팔 지역에서 오래도록 일을 했지만, 인도는 항상 우리에겐 특별한 곳이었다.

그래서 그해 인도에서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친구와 나는 인도 북쪽의 갠지스강이 흐르는 '리시케시'라는 곳에서 한동안 요가를 했다. 그리고 인도 북부를 여행한 후에 다시 리시케시로 들어와 일주일을 머물고 중동 지방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인도 국경에서부터 육로로 파키스탄, 이란, 터키로 이동했고, 그 길지 않았던 3개월 동안 중동 지역을 여행하면서도 난 인도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래서 터키에서 인도로 홀로 되돌아 갔다.


그리고 아마 희미한 내 기억이 맞다면 그 해 겨울을 보드가야에서 보냈을 것이다.

델리에서부터 긴 시간의 기차를 타고 릭샤를 타고 다시 찾아간 보드가야에는 많은 수행자들이 텐트를 치며 생활하고 있었고, 다시 찾아간 모하메드의 천막 식당은 역시 따스했다. 12월의 인도는 예상외로 쌀쌀해서 부엌에 나무로 불을 때는 모하메드 레스토랑은 참 따스했다. 그리고 함께 일하고 있는 소년들의 미소도 따스했다.


그렇게 그해 나는 그곳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곳 부엌에서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밀가루를 빚어 인도 밀전병 빵을 만드는 연습을 하기도 하였고, 티벳 만두를 만들어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주문이 들어온 레몬 진저 허니 티나 인도 홍차를 만들기도 하였고, 부엌에서 일하는 모든 소년들은 내게 아주 정중했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까불까불 장난을 치기에 바빴지만 말이다.

나중에 (10년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모하메드가 모든 소년들에게 몇 번이고 당부했다고 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하라고....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대탑에서는 오늘도 불경 소리와 종소리가 들린다.

보드가야는 내게 이렇게 큰 인연이 맞닿아 있다.


그들과 인연이 맞닿은지 벌써 10년이 시간이 지났고, 우리들은 우리들의 노년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함께 한 공간에서 살면서 지금처럼 장난을 치며, 음식을 만들며 시간을 함께 하기로.


과연 이 또 다른 염원도 이루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