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분자

by 이소망

고등학교 1학년. 현재 현대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역사수업 분야에서 참으로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르치는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죠. 예전에 교원평가 때 학생들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정치색깔이 너무 뚜렷해서 수업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같은 년도의 다른 학생의 평가.


"선생님은 정치색깔이 없어서 너무 좋았다."


어느 장단에도 맞춰 춤을 출 수 없는 그런 분야가 현대사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저희 아버지에게 저는 좌파지만 제 친구에게는 극우니까 말이죠.

수업할 때는 최대한 저의 생각을 빼고 사실만을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수업을 시작합니다. 사실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판단은 너희들의 몫이다.


하지만 제가 수업 때 어떤 사실을 골라서 수업하냐에 따라서 학생들의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건과 인물에 대해 전부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너무 사건과 인물이 많아 방대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교과서에 나와있는 내용을 가르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실을 선택해서 학생들에게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번 잘 가르치고 있는지 점검하면서 수업을 준비합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회색분자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혹시 저의 생각과 사상이 학생들에게 전가될까 염려하면서 말이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중도의 삶. 수업 때만큼은 약간 비겁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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