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인간을 키우는 교사. 학생들을 처음 만나는 시간. 앞문을 열고 들어가 출석부의 이름을 부르고 학생들의 눈을 한 번씩 바라본 다음에 칠판에 적습니다. 이소망. 제 소개를 합니다. 약간 중성적인 제 이름. 대부분이 여자 선생님으로 알지만 만나보면 까맣고 덩치 큰 남자선생님. 그렇게 학생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칠판에 적습니다. 인간다운 인간을 키우는 교사. 제 꿈입니다. 처음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마음을 가지고 자라다가 정리한 제 꿈. 인간다운 인간을 키우는 교사. 학생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인간다운 인간을 키우는 교사가 되는 것이 내 꿈이다.' 학생들은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한 저를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학생들에게 질문합니다. '샘은 인간다운 인간을 키우고 싶은데 인간이란 뭘까?' 그 서먹한 첫 대면 시간. 이제 새 학년이 되어서 설레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친구들도 선생님도 낯선 그곳에서 이렇게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니 학생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한 학생에게 질문합니다. '너는 사람이니?' 질문받은 학생이 대답합니다. '네' 자연스럽게 저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네가 왜 사람이냐?' 연이어 질문을 받은 학생은 당황 혹은 불쾌해하고 다른 친구들은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합니다. '그러게요....' 학생이 대답합니다. 이제 다른 학생에게 질문합니다. '너는 사람이냐?' 다른 학생이 대답합니다. '네' 또다시 묻습니다. '네가 왜 사람이냐?' 두 번째 질문을 받은 학생은 저의 질문을 예상했기에 조금은 고민하고 대답합니다. '말을 할 수 있어서?' 조금은 발전된 모습을 칭찬하지만 답은 아닙니다. 다른 동물들도 그들만의 말을 하는데 그렇다고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학생에게 질문합니다. '너는 사람이니?' '아뇨.' 어려운 질문을 대답하기 싫어 사람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웃습니다. 이제 슬슬 질문을 마칠 시간입니다. 마지막 학생에게 질문합니다. '너는 사람이니?' 학생이 대답합니다. '네' 또다시 되묻습니다. '네가 왜 사람이냐?' '사람이니까요.‘ 계속된 질문에 학생들은 이젠 조금 짜증이 나는 것 같습니다. 분위기를 정돈하고 학생들에게 답을 알려줍니다. '너희들은 전부 사람이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사람이시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너무 허무한 결론에 허탈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너희 부모님은 왜 사람일까?' 한 학생이 대답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람이시니까요.' 감탄하며 칭찬합니다. '바로 그거다! 개한테 개나고 말한테 말나고 소한테 소나는 것처럼 사람한테 사람 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사람이 아닌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사람에게서 태어났으니까.' 아이들은 이상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질문을 바꿔서 학생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그럼 너희는 인간이냐?' 학생들이 대답합니다. '네.' 아이들은 이제 무슨 질문이 돌아올지 알고 있습니다. '너희가 왜 인간이냐?' 이제 학생들은 대답합니다. '부모님이 인간이 셔서요.' 이 타이밍이면 제 생각을 이야기해 줄 때가 되었습니다. '아니다. 좋은 추론이었지만 이 질문의 답은 그게 아니다. 사람은 처음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 되지만 인간이란 우리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은 한자로 사람인에 사이간자를 쓴다.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결국 인간이라는 말은 사람은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사이가 있다면 인간이 된다는 말로 풀이된다고 샘은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이란 무엇이냐.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이 것을 잘 가지고 있으면 인간이 되고 이 거리가 없으면 인간이 아니란 이야기다. 예를 들자면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보는 내용들이 있다. 자신의 아이를 죽인 부모. 자신의 딸을 성폭행한 아버지. 부모를 버린 자식들. 많은 사건들을 우린 뉴스와 인터넷에서 본다. 우린 그들을 보면서 인간말종. 인간쓰레기. 개새끼. 짐승이란 표현을 쓴다. 왜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말종. 쓰레기. 개새끼가 되는 것일까? 사이를 지키지 않아서 그렇다. 자신의 아이를 죽인 부모는 부모와 자식 간에 지켜야 되는 거리를 너무 멀리 떨어뜨림으로 인간이 아니고 자신의 딸을 성폭행한 아버지는 아버지와 딸이 지켜야 되는 거리를 너무 가깝게 함으로 인간이 아니며 부모를 버린 자식들은 또한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거리를 지키지 않아 짐승이 된다. 이런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고 우리는 이야기한다. 나는 살면서 이 거리를 지키는 너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이 분필을 잡고 있는 이유고 내가 너희들을 가르치는 목적이며 나의 꿈이다. 너희를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것. 일 년 동안 나와도 이 거리를 잘 지키는 사람이 되어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교사와 학생으로서의 거리를 잘 지켜야 한다. 그래야 너희도 나도 인간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혼자만 잘한다고 해서 이 거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잘 지키는데 너희가 안 지키면 인간이 아니고 반대로 너희는 잘 지키는데 내가 안 지키면 인간이 아니다. 곧 둘 다 이 거리를 잘 지켜야 우리 모두 인간이 될 수 있다. 일 년 동안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자. 잘 부탁한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때마침 종이치고 수업을 마칩니다. 인사를 하고 교실 밖으로 나오면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상한 사람이 담임이 된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