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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망 Nov 30. 2020

왜 내 자식은 그게 안되는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한가지 유념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내가 이 아이의 인생을 책임져 줄수도 없으며 책임져서도 안된다는 것. 때때로 교사라는 권력으로 아이의 인생에 개입을 시도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적장한 선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교사의 의무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에게 적절한 가이드라인만 제시해줄 뿐 더 깊은 참견은 지양하려고 한다. 

가령 공부를 안하는 학생들에게 공부의 필요성은 알려주지만 지금 공부를 안해도 언젠가 할 것이란 기대감을 갖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피곤했으면 자겠냐라는 연민의 마음을 느낀다. 공부에도 때가 있듯이 지금 아무 생각이 없어도 기다려주는 참 교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한없이 놀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그런데. 왜 내 애는 안되는가.


지금 누워서 만화책을 보고 있는 저 첫째에게 느끼는 분노는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젯밤에 뭐했는지 온라인 강의를 틀어놓고 졸고 있는 둘째는 뭐하고 있는 것이고, 정말 아무런 생각없이 사소한 것으로 목청 높여 싸우고 있는 셋째와 넷째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오늘도 퇴근하며 아이들과 놀아주고 대화하고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기로 다짐했던 나의 다짐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고 벌써 화를 참기에 급급한 아빠가 되어버렸다. 


왜 남의 아이들이 하는 행동은 귀여운데 내 애는 안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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