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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망 Oct 22. 2019

자립과 방치

 때는 초등학교 1학년. 어머니와 외숙모. 형과 나는 현 뉴코아 아울렛의 전신인 2001 아울렛에 놀러갔다. 우리는 외숙모의 차를 타고 아울렛에 내려 쇼핑을 하다가 형과 나는 게임코너에서 멈춰섰고 어머니와 외숙모는 식료품 코너로 가셨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마감이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어머니와 외숙모를 찾아 2001 아울렛을 헤매기 시작했다. 1층까지 내려온 우리들은 외숙모의 차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외숙모는 볼일이 있어 먼저 귀가하셨고 어머니는 지하 식료품에서 물건을 사고 계셨지만 우리는 어머니와 외숙모가 우리를 두고 집으로 돌아가신 줄 착각했다. 당시 형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도심한복판에 버려졌지만 이상하게 무섭지 않았다. 우리는 집까지 잘 찾아올 수 있는지 확인하는 어머니의 테스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염없이 걸었다. 시간은 밤 9시. 2001 아울렛부터 집까지의 거리는 5km가 넘었다. 열심히 걸어 테스트에 합격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자 했던 우리는 그렇게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를 기쁘게 맞아 주실 줄 알았던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한창 TV를 보고 있는데 차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사람들이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이 없어졌다고 말씀하시며 집에 돌아오신 어머니는 우리를 보고선 적잖이 놀라셨다. 화가 나신 모습은 아니었고 놀란 모습이셨다. 왜 잃어버린 내아이들이 여기에 있을까. 그 후의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테스트에 통과했다는 기쁨만 남았을뿐.

 

 어제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가 엄마를 급하게 찾았다. '엄마. 과자 먹어도 되요?' 엄마는 대답했다. '어. 그래. 먹어도 돼. 근데 하늘아. 그런건 엄마에게 이제 물어보지 않아도 돼. 먹고 싶으면 먹어. 하지만 적당히 먹고.' 엄마는 약간의 짜증을 섞어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물어본 것이 벌써 10번이 넘기 때문이다. 왜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 모든 것에 허락을 받으려 할까. 어릴 때부터 모든 것에 허락을 받도록 가르쳐왔기 때문일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모는 자식들이 자립하도록 도와야 한다. 스스로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아이를 격려해야 한다.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그 자립은 방치와 한끗차이인듯 하다. 아이들이 자립하도록 두는 것과 내버려두는 것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 행위에 사랑이 있으면 자립이겠고 사랑이 없다면 방치겠으나 그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차이일 뿐 행위 자체에는 큰 차이점이 있어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을 기르고 있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내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이 진정 자립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가는,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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