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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구리즘 Nov 30. 2023

To. 아빠, 아직 죽으면 안 돼

아빠와 탱자

어느 날 마당에 있는

아빠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볼일 보는 듯 쭈그려 앉은 뒷모습이다.

담배를 피나 싶었는데 그것치고는 고개와 손이 상당이 분주했다.

뭐 하나 싶어 고개를 빼꼼하며

다른 곳 보다 비어있는 정수리와

귀 옆 흰머리를 눈으로 좇다 보니

이 세상 아버지들의 영원한 커플템 흰색 런닝을 입은 아빠의 왜소한 몸에 가려져있던 더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가 심긴 큰 화분이 보였다.

“에에?! 아빠 이거 뭐야?”

진심에서 우러난 어이없음을 완벽히 소화해 내는

배우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와 식물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빠는 술을 좋아한다.

환갑을 앞둔 지금도 하루에 1.5병 이상은 꼭 마신다. 일이 고된 날에는 소주를 머그컵에 부어서 물처럼 마신다.

언니가 아주 어릴 적, 3살쯤에 물인 줄 알고 소주를 마셔서 하루종일 헤롱했다는 이야기는 언니의 실수 90%와, 술만 보면 손이 가는 대대로 이어진 유전자 10%가 섞인 일인지도 모른다.


아빠는 담배를 좋아한다.

밥 먹었다고 빽, 피곤하다고 빽, 머리 아프다고 빽,

뭐가 그리 맛있고 좋은지 빽빽 피워댄다.

식물 앞에서도 담배를 피워댄다.

엄마는 물이 모자라서 담배도 주냐고

식물 다 죽겠다고 잔소리 해댄다.


아빠는 욕도 잘한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오빠 말로는

젊었을 때 아빠 인상이 드러워서 아니 무서워서,

또 성질이 불같아서 사람들이 아빠 앞에서는 무슨 말을 못 했다고 한다. 너희 키우면서 지금은 많이 아주 많이 유해졌다고 신기하다며.


아빠가 전화가 오는 날이면

10의 9는 술을 먹어서 오는 것이다.

“응 아빠”

“니 전화 안 한지 꽤 됐대이?”

“어제 했는데 아빠가 안 받았잖아”

“아…술 먹는다고 못 받았지~ 그래서 다시 했잖아 허허”

특유의 술 한 잔 걸친 후에 사람 좋은 너털한 웃음과 기분 좋은 목소리다.

아빠의 기분과 나의 기분은 반비례에 가깝다.

아빠가 술 때문에 기분이 좋으면 좋을수록

나는 기분이 나쁘다.

“아빠 술 좀 그만 먹어, 좀 줄여!”

허허허 웃는 아빠의 말은 잔소리로 받아친다.

밥 먹었어?라는 말과 비슷한 결로 하는 말이다.

“술 먹고 한 번에 콱 죽으면 되지! 이렇게 행복하게 살다 가면 된 거지 “ 아빠는 매 번 세상 쿨한 사람인 것 마냥 반응한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 말이 타격감이 있었는데…

아빠 죽으면 안 돼 라며 애교를 떨어야 하나?

그러기엔 내가 너무 귀엽지 않다는 생각과

사람이 쉽게 죽어지는 것도 아니라며 진지하게

따져볼까 고민했다.

몇 번을 듣고 익숙해진 그 말에 이제는

“아 뭐래~ 술 마시지 마라”

하며 다른 이야기로 스르륵 넘어간다.

이런저런 알맹이 없는 말들이 오고 가다가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끝인사로 전화를 끊는다.

항상 전화를 끊으며 마음속에 남은 찝찝함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 다른 누구보다 부모에게 제일 무뚝뚝한 경상도 딸로서 대답이 잘못돼도 참 잘못되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책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너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니?’

대놓고 하기 멋쩍은 그 말을 누군가에게 하는 대신 식물을 돌보게 됐다는 글이다.


큰 딸은 직장 근처에서 자취하고

작은 딸은 타지에서 일하고

아내는 3교대로 같이 사나 마나인 삶.

혼자 새벽에 일어나서 밥을 차려먹고 일을 가고,

퇴근 후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아빠는 누군가의 필요가 돼야 하는 사람이었나

생각했다.

부모의 돌봄이 절실히 필요했던 딸들은

부모가 주는 물과 비료와 햇빛을 받아먹다가

어느새 혼자서도 있을 수 있는 나무가 되어있었다.


큰 딸이 사 온 탱자나무.

선물 받은 화분 키우기 힘들다고 자기 대신 달랑 집에 두고 간 탱자나무를 영양제를 먹이고 닦아주고 물을 주고 하더니 언젠가 따뜻하고 밝은 형광등 같은 노오란 열매를 맺었다.

아빠는 초겨울 밖에서 일하느라 얼굴에 껍질이 일고손이 부르터도 알로에 크림은 죽어라 안 바르면서 탱자나무인지 귤나무인지는 얼어 죽는다고 아주 조심스럽게 집 안에 가져다 둔다. 제 몸은 안 챙기면서 말도 못 하는 푸르뎅뎅한 식물은 아기 다루듯 다정히 만진다.


아빠 외 3명은 항상 술과 담배를 줄이라며 건강을 생각하라 닦달하고 아빠는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는 끝이 없고 답이 없는 실랑이 속에서

아빠한테 다르게 말해보자고 다짐했다.


아빠가 내 아들 딸도 키워주도 용돈도 주고 걔들 어른 될 때까지 좋은 말도 많이 해주고
손자 손녀들이랑 3대가 모여서
소주 마셔야 하니깐 더 살아!
난 아빠가 아직 한참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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