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도시 여행 1 : 홋카이도(北海道) 오타루(小樽,おたる)
여행의 전성시대다. 누구나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나 역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여행작가를 꿈꾸기도 했지만, 막상 일상으로 돌아오면 전쟁 같은 생활이 이어진다. 사진도, 여행기록도 모두 휴대폰 속에 방치될 뿐이고, 그토록 좋았던 감정과 기억들은 서서히 희미해져 간다.
그래서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본다. 오롯이 나만의 이야기를 남기기로.
떠나야할 때
2025년 3월, 나에게는 조금의 쉼이 필요했다. 1년 2개월의 긴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니, 큰 일을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보다는 그동안 나를 가득 채웠던 일상이 모두 빠져나가며 느껴지는 공허함과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런 때에는 망설일 것 없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직장인인 내게 짧은 시간 다녀오기 좋은 곳은 일본의 소도시들이다. 벚꽃이 개화하기 시작하는 3월, 일본 본토는 봄맞이로 정신없이 분주하다. 하지만 홋카이도는 사정이 다르다. 3월에도 여전히 눈발이 휘날리고, 상대적으로 사람도 적은 홋카이도야말로 지금의 나에게 최적의 여행지였다.
러브레터의 도시, 오타루
첫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도시는 운하도시 오타루다. 이와이 순지 감독이 만든 영화 「러브레터」는 주연배우 나카야마 미호와 오타루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고베지만, 촬영지는 대부분 오타루에서 이루어졌다. 1995년에 개봉된 이 영화가 벌써 30년 가까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영화 「러브레터」에서는 아름다운 오타루 운하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지만, 운하 주변으로 이츠키의 근무지인 도서관으로 나오는 옛 일본우선오타루지점, 운하공예관, 그리고 이츠키와 히로코가 스쳐 지나가는 교차로 등이 펼쳐져 있다.
일부러 찾아볼 필요는 없지만, 러브레터의 감성을 지니고 있다면 숨은 건물들을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단, 겨울철에는 숨은 건물 찾기는 피하자. 춥기도 하고, 막상 찾았다 해도 오래된 건물들은 겨울에 문을 열지 않는다. 영화 속 건물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오타루는 러브레터의 도시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혼술의 묘미
러브레터의 추억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오랜 산책으로 출출해진 배를 채울 차례였다. 휴대폰으로 오타루 맛집을 검색해보니 어디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조용한 곳을 찾아 발길을 돌렸다. 오타루 시장 근처를 걷다가 중식당 '케이엔 [中華食堂 桂苑]'을 발견했다. 식당 안도 제법 붐볐지만, 무엇보다 중화 요리 특유의 불 냄새가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자리에 앉아 우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메인으로는 걸쭉한 소스가 일품인 안카케소바와 바삭한 군만두를 골랐다. 허기를 달래고 나니 자연스럽게 2차에 대한 생각이 스몄다.
2차로는 따뜻한 오뎅과 오타루 맥주가 먹고 싶어서 이자카야를 찾았다. '오타루 라쿠텐【小樽 居酒屋】'이라는 가게에서 오뎅과 오늘의 사시미, 그리고 굴요리까지 주문했다. 원래 혼자 이렇게 많이 먹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분위기에 취해 마음껏 마시고 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여행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타루 라쿠텐은 다음에도 꼭 가야 할 식당이다. 분위기, 가격, 맛 모두 좋았다. 무엇보다도 아늑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4월의 눈, 그리고 위로
술을 적당히 마시고 가게 밖으로 나왔는데, 홋카이도의 눈을 만날 수 있었다. 내일이 4월인데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홋카이도의 눈을 보니, 힘들었던 마음들은 사라지고 힐링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에 있는 가족들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참 잘 왔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오타루의 하얀 눈이 내 마음속 복잡했던 감정들을 모두 덮어주는 것 같았다.
오타루를 즐기는 Tip.
오타루, 반나절로 충분한 매력적인 여행지
오타루는 적당한 시간 투자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지다. 홋카이도는 지도상 거리와 달리 실제 이동시간이 상당히 길다. 인천공항에서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까지는 FSC(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준 2시간 50분, LCC(제주항공/진에어 등)기준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아침 일찍 출발해도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면 이미 오후가 되어 있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오타루는 반나절 정도면 그 특별한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타루 반나절 여행 코스
오전 10시 인천공항을 출발하면 오후 3시 30분~4시경 오타루에 도착한다. 이때부터 시작하는 반나절 코스를 소개한다. 오타루역에서 시작해서 옛 테미아선 철길 → 오타루 운하 → 기타이치 유리 → 르타오 본점 → 오르골당 → 사케 양조장 → 덴구야마 전망대(선택) 순으로 돌아보면 된다. 이 코스대로 따라가면 오타루의 핵심 명소들을 반나절 만에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각 장소 간 거리가 가까워 도보로도 무리 없이 이동 가능하다. 단 덴구야마 전망대는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덴구야마 전망대를 포기하고,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삿포로로 돌아가는 일정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