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하탄K Jul 25. 2016

도시락은 사랑을 싣고, "런치박스"

  자전거에 한가득 도시락 통을 매달고 온 배달부에게 자신의 초록색 도시락 가방을 건네는 일라. 건네진 도시락은 기차를 타고 소란스레 분류작업을 거친 후, 어느 회사에 도달한다. 매일 아침, 그녀처럼 수많은 주부들이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고, 배달부들은 그 도시락을 회사로 배달한다. 생경스럽지만 이 장면은 인도 뭄바이의 일상이다. 이렇게 친절한 영화의 도입부에 우리는 “런치박스”가 우리의 평범한 도시락이 아님을 깨닫고,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일라의 도시락은 한 회사원의 데스크 앞에 놓여진다. 식당에 앉아서도 무표정하게 도시락 통을 여는 남자, 사잔

  그는 도시락의 냄새를 맡고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오묘한 표정으로 음식을 먹는다. 초록색 가방에 담긴 도시락은 다시 일라에게로 돌아간다. 깨끗이 비워진 도시락에 기뻐하는 일라. 일라는 위층의 이웃아줌마와 함께 드디어 남편이 도시락을 비웠다며 기뻐한다. 하지만 회사에서 돌아온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만든 음식이 아닌 다른 음식을 이야기 하는데..! 그랬다. 일라의 도시락이 남편이 아닌, 은퇴를 앞둔 회사원인 사잔에게로 잘못 배달된 것이다. 그 다음 번에도 도시락은 여전히 사잔에게로 배달된다. 그렇게 시작된 일라와 사잔의 편지 교환.  

  그렇게 굴러 들어온 우연은 일라와 사잔, 둘에게 박혀있던 “일상”을 빼내버리고, 어느새 그들의 일상이 되어 버린다.

  수많은 “톡”들이 난무하고, 인스턴트 관계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손 편지 교환은 멀지는 않은 우리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우리는, 하나의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한다. 잘못 된 것은 애초에 바로 잡는 게 맞는 것을, 우리는 그 도시락이 또 다시 “잘못!” 배달되어 그녀의 남편에게 가지는 않을까 가슴을 졸인다. 그 뭉글뭉글한 일상을 지켜보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마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로맨스,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흘러간다. 로맨틱 코메디라고 하기에는 일상적이고, 로맨스라고 하기엔 담담하다. 그리고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가벼웁다. 감독의 유머 또한 곳곳에 녹아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일상”인 것이다.     

 영화는 2013년 칸 영화제의 비평가 주간에 관객상을 수상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짤막한 스포일러를 하겠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우리는 그들의 투 샷을 보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 내가 엔딩 크레딧이 끝나도록 자리를 떠나지 못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때 필자는 “설마 이게 끝이겠어?”가 아닌, “둘 다 무슨 표정을 할까.”하며 그들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함께 자리를 지켰던 다른 관객들, 그리고 런치박스에 상을 주었던 칸의 관객들 모두 그러한 생각이었을 것이리라. 

  열린 결말이 관객에게 주는 “짜증스러움”과 “답답함”은 없다. 런치박스가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한가?      


때로는 잘못 탄 기차가 올바른 목적지까지 우리를 데려다 준다.




이 평론은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런치박스를 보고 작성한 것이다.

늦는 바람에 영화의 초입을 놓치는 게 아닌가 했는데 내가 도착하자말자 자막오류로

다시 상영을 시작했던 "런치박스".


한동안 무감성시대를 지냈던 나에게 단비와도 같았던 영화.

매거진의 이전글 <더 헬프>,“너는 똑똑하고, 친절하고, 소중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