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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망이 Dec 23. 2019

상상을 멈추지 않기

<예언자적 상상력>, 월터 브루그만

“우리는 함께 말씀을 읽고, 성찬을 나눕니다. 시편을 고백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것이 우리의 예배입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인가. 세상이 이렇게 혼란한 마당에 예배처럼 무력하고 소모적인 행위가 또 있을까. 예배는 여전히 유효한가. 이와 같은 물음은 그리스도인들을 당황시킨다.

월터 브루그만의 저서 『예언자적 상상력』은 예배에 관한 책은 아니다. 기억하기로는 ‘예배’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필자가) 책을 오독했거나, 섣부르게 적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책을 읽은 후, 무의미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근본적인 행위 ‘예배’를 떠올리는 일이 그리 부자연스럽지 많은 않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송영의 언어를 어떻게 제국 속에서 실천할  있는지를 묻는 일은 중요하다. 송영이 있는 곳에서만 긍휼이 자랄  있는데,  까닭은 자명한 원리로 주장되는 이데올로기를 송영이 깨뜨리기 때문이다.  송영이 있는 곳에서만 정의가 있을  있는데, 그러한 노래가 두려움을 활력으로 바꾸기 때문이다.”(72)

저자는 송영 뿐 아니라 시, 노래, 말씀의 발화(선포)등이 새롭고 대안적인 언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예배라는 행위와 그 속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 월터 브루그만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구약학자이다. 저서로는 『텍스트가 설교하게 하라』, 『안식일은 저항이다』, 『구약의 위대한 기도』 등 10권 이상의 저작들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예언자적 상상력』은 1978년 출판 되었다가 2000년에 개정되어 다시 출간 되었다(국내에서는 1981년에 출간 되었다가 2009년에 개정판 출간). 『예언자적 상상력』은 저자의 탄탄한 학문과 자신의 주장이 균형 있게 결합되어 독자들을 설득한다. 저자는 사회비평적 성서읽기와 의심의 해석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다.

나는 왕과 관련된 본문 속에 들어 있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진지한 사회 비판을 하려고 했다. 다시 말해, 나는  본문에 의심의 해석학을 적용했다. 솔로몬의 통치가 파국으로 끝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우상숭배에다 노동문제와 관련된 경제정책의 비판을 결합하는 것을  , 내가 제기한 의심의 해석학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32)”

저자는 솔로몬의 시대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흥미로운 시선이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을 최전성기로 이끌었고, 성전을 건축했으며 성전체제를 완성했다. 성서본문도 솔로몬의 공적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저자는 솔로몬의 왕정체제를 파라오의 이집트 제국과 동일선상에 놓는다. 솔로몬 왕정이 이집트 제국이 펼친 ‘억압과 착취의 정치’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솔로몬 시대에  모든 일은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효과적인 보호막 아래서 이루어졌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진 가나안화의 정수다. 조지 멘덴홀이 솔로몬의 업적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이교화라고 칭한 ,  모세 이전의 제국 시대에 있었던 종교적/정치적 전제 조건으로 되돌아간 일이라고 정의한 것은 옳다. 다시 말해, 솔로몬이 이루고자 애쓴 일은 혁명의 포기였을  아니라 의도적으로 예언자적 현실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79)  

이집트 제국과 솔로몬의 왕정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이 저자의 독특한 시선이다. 그렇다면 제국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무감각’이다. 제국은 감각을 잃어버린 세계다. 그 세계는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제국의 신들은 그들의 풍요와 안정, 질서와 평안을 뒷받침 한다. 여기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언자이다.

제국의 특징을 ‘무감각’이라고 한다면, ‘상상력’은 반대편에 자리한다. 상상력은 예언자들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표현된다. 탄원, 비판, 노래와 시, 애통, 말씀의 발화, 절망(고통)을 마주하기, 위로 등이 바로 그것이다. 비판을 예로 들어보자.

"이스라엘이 애통하는 데서 비판은 시작된다. 애통은 자기연민의 표현일 수도 있고, 탄원인 것은 확실하나 결코 체념은 아니다. 아픔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해체하는 비판의 중요한 첫걸음이 되고, 이러한 비판은 신학적이고 사회적인 면에서 새로운 현실을 연다. 역사의 문을 두드리는 이러한 울부짖음을 야웨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역사는 힘을 얻게 된다"(63).

『예언자적 상상력』은 네 사람의 예언자를 다룬다. 모세를 시작으로 예레미야와 제2이사야, 그리고 예수를 예언자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저자가 생각하는 예언자는 파라오가 다스리는 제국적 질서에 대해 자유로운 하나님을 제시함으로써, 새롭고 대안적인 세상을 제시하며, 제국을 해체하는 존재다.

모세는 단순히 노예들을 이집트 바깥으로 끌어내거나, 이집트의 우상들과 싸운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세가 의도했던 일은, 적은 무리의 노예들을 해방시켜 이집트 제국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세가 한 일은 이집트 제국의 의식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었고, 그는 그 제국을 사회 관습과 신화적 주장의 양면에서 해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59) 그것은 탄원(애통)과 비판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왕정을 선택한다. 왕정은 성전을 건축함으로써, 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자유로운 하나님을 통제하려고 한다. 왕정은 현재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꿈꾸며 종말을 외면한다. 이때 예언자는 종말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존재다. 예레미야는 종말이 가져오는 고통과 절망을 대면한다. “예레미야가 눈물을 흘리며 요구한 것은 단지 왕의 공동체가 자기의 현실을 경험하고, 그래서 종말 앞으로 다가서는 일뿐이었다.”(110) 종말을 외면하는 왕의 공동체를 꿰뚫는 예레미야의 상상력은 애통이다. 애통은 왕의 공동체의 무감각을 해체한다. 반면, 제2이사야는 고통과 절망을 경험한 공동체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제2이사야는 고통과 절망을 공동체를 위로하고, 희망을 선언한다. “예레미야의 이야기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절한 비탄 속에 내버려 두는데 반해, 제2이사야는 이스라엘을 활기 넘치는 기쁨으로 인도한다. 예레미야는 무감각을 깨뜨리고자 애썼던데 반해, 제2이사야는 절망과 씨름해야 했다.”(142)

마지막으로 예수 역시 예언자적 인물이다. 그러나 예수는 예언자 중 한명이 아니라, 예언자적 사명을 완수하는 존재다. 자신의 목회 안에서 예언자들의 상상력을 통합한다. 예수의 용서, 치유, 식탁교제, 가르침, 빚탕감을 통해 제국적 가치를 해체한다. 특히 십자가 죽음에서 예수의 예언자적 상상력은 절정에 이른다.

십자가 처형은 신앙의 역사 속에 등장한 결정적인 사건이기는 하지만 결코 뜻밖의 사건은 아니다 오히려 십자가 처형은 모세가 파라오와 맞서 싸운 이래로, 예언자적 전통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실천해  해체를 완벽하게 성취한 사건이다”(181).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의식의 종말을 의미하며, 그런 까닭에 십자가는 예언자적 비판을 나타내는 궁극적 은유다”(182).

저자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견해를 펼쳐간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가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세계는 파라오의 제국적인 가치가 다스리는 세계다. 무감각한 질서와 안정이 자유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세계다. 예언자적 상상력은 그런 왕정 질서에 저항하며, 제국을 해체할 대안이다.  

책 전반에 동의하고, 배운 것이 많지만 못내 찝찝한 점도 있다. 첫째, ‘왕정 대 예언자’의 방식으로 논증하다보니 세계를 단순화, 이원화하는 경향을 띤다. 둘째, 다소 관념적이고 반복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자가 제시하는 ‘상상력’은 정말 힘이 있을까? 부록으로 ‘예언자적 상상력’에 부합하는 기관들을 소개하지만, 독자에게 얼마나 가닿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제국을 돌파할 방법을 찾아 방황한다. 풍요와 무감각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그런 점에서 『예언자적 상상력』은 교회의 근본 행위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마치 광야에 선 요한처럼 저자는 외친다. 노래와 시를 멈추지 말기를. 함께 떡을 떼고 마시는 일을 멈추지 말기를. 눈앞에 펼쳐진 세계 이상의 삶을 희망하기를 멈추지 않기를.



서평16. 예언자적 상상력/월터 브루그만/복있는 사람/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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