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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망이 Dec 21. 2019

선 지우기

<소년이 온다>, 한강

어렸을 때 아빠에게 ‘옷장 위에 총을 숨겨놓고 살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같은 자리에서 엄마는 ‘너희 아빠 죽는 줄 알고 심장이 떨렸다.’고 말했다. ‘그날 아빠도 바깥에 있었다.’고도 했다. 큰 감흥은 없었다. 엄마는 여리고 겁도 많으니까. 그저 결혼 초기에 겪은 일화 정도로 생각했다.


광주에 큰 일이 있던 그 해, 나는 그 곳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탄흔이 새겨진 도청은 자주 오가던 길목에 있었고, 집 앞에 뒹굴던 최류탄 껍데기를 갖고 놀다가 큰일을 치를 뻔도 했다. 그러나 잘 몰랐다. 어렸으니까. 몰랐다고? 알았다. 어른이 돼서 들었으니까. 교과서에서 읽었고, 머리가 벗겨지고 안경을 쓴 옛 군인의 웃는 얼굴을 뉴스에서 보았다. 웹툰과 영화 등이 재현한 광주를 보며 치를 떨었고 분노했다. 울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렇게 선을 그었다. 그 일이 꼭 실제가 아닌 것처럼. 마치 어렸을 엄마 아빠의 얘기를 들은 것처럼. 과거에 존재했던 절대악과 나는 무관한 것처럼. 그때의 광주와 나 사이에 선을 그었다. ‘나쁜 놈들, 죽일 놈들’이라고 말하면 되었다. 그날의 고통과 기억은 내 것이 아니므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광주 5.18을 다룬다. 총에 맞아 쓰러진 친구를 지키지 못한 소년은 죄책감 때문인지 썩어가는 시신들이 바닥에 늘어선 도청을 찾는다. 그곳에서 소년은 진수, 선주, 은숙을 도와 시신을 확인하고, 확인된 이름을 명부에 기록하는 일을 맡는다. 군대가 중무장한 탱크를 앞세워 도시를 점령하던 날, 동호는 도청에 남기로 한다. 소년은 죽음 곁에 남는다.  

소설은 동호라는 소년이 우리에게 오는 이야기이다. 썩어가는 몸 덩어리들이 비좁게 누워있는 도청에 남기로 한 동호는 오늘도 묻는다. 저 썩어가는 몸들은 무엇이냐고. 인간이 아니냐고. 몸이 없으니 입도 당연히 없을 텐데도 내게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이냐고. 정말로 우리는 존엄했냐고. 인간은 존엄하냐고. 몸이 없으니 발도 없을텐데, 지금도 소년은 온다.

어쩌면 소년은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되어 오는 것이지도 모른다. 옆에서 뿐 아니라, 내 안에서 소년은 인간은 정말로 존엄하냐고 묻고 있다. 살(殺)처분 당한 돼지들처럼 학살당한 몸들에 대해 아직 치르지 못한 장례가 남지 않았느냐고 입 없는 입으로 소년은 말한다. 그어놓은 선을 넘어가라고 영혼은 글이 되어 말한다.  

당신이 죽은  장례를 치르지 못해,/당신을 보았던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100)

기억해야 할 이야기가, 오고 있는 이름이 남아있다. 이야기가 재현되어야 한다면, 이름을 불러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와 군인들, 서울과 광주, 2017년과 1980년 사이에 선을 긋는 방식은 안 된다. 슬픔을 유발하고, 분노를 일으키고, 도덕적 우위만을 확인하는 방식과는 싸워야 한다. 재현해야 한다면 그것은 오늘에 묻는 방식이라야 한다. 이름을 새기는 것이라야 하며, 고통을 나에게까지 넓히는 것이라야 한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그 선을 지우려고 한다.




서평7. 소년이 온다/한강/창비/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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