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을 보고
크리스마스에 영화라도 한 편 볼까 하는 마음에 상영작을 살펴보니 하얼빈이 있었다. 요즘 대대적인 홍보 작업을 하고 있는 영화다. 제작비가 300억이고 한국 영화 최초로 IMAX 화면비를 지원하는 최신 카메라로 촬영한 대작이다. 실제로 영상이 굉장히 웅장했다.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로 잘 알려진 우민호 감독은 영웅 안중근이 아닌, 인간적인 면모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흔들리면서도 오롯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걸었던 인간 안중근.
그래서인지 영화는 시종일관 묵직하다. 영화관에 가득 찬 사람들의 소리가 하나도 새어 나오지 않는 2시간이었다. 드넓은 만주벌판을 지나는 독립운동가의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지만, 끝내 그 길을 헤쳐 나가는 장면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는 이미 완성되었고 개봉날이 계속 미뤄지다가 이제야 상영한다고 하는데 묘하게 시국에 맞는 대사들이 많다.
"조선이란 나라는 수백 년간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 온 나라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다,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이토 히로부미-
그 '이상한 힘'을 가진 민족은 지금도 위기 속에서 놀라운 저력과 단결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안중근-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대사는 현재 우리의 시위 문화와 놀라운 연결점을 보여준다. 영화는 다른 곳에서 다루지 않는 패장 안중근의 모습도 다루고 있다. 의병으로 활동하던 당시 일본군 포로를 풀어주는 바람에 역습을 당해 부하를 모두 잃고 동지들의 비난을 받는다.
그의 죄책감과 고통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는데 이런 서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완전무결한 영웅이 아닌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안중근의 모습이 인상 깊다. 감정선을 잘 표현한 웰메이드 영화라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영화의 서사가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다루는 데 치중하다 보니, 사건 전개의 긴장감이 부족하다거나 국뽕에 찬 영화라는 비판도 있다. 호불호가 갈리고 평점도 다양하다. 그건 우리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은 영화였어. 배우들 연기도 훌륭했어.”
“영상이 지나치게 웅장한 느낌이었어. 마치 고급 레스토랑의 화려한 접시에 스테이크 한 조각만 놓인 느낌이랄까, 스테이크는 이미 맛있는 건데 굳이 이런 접시에 올렸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나는 암살이 더 재미있었어.”
하지만 영화 하얼빈은 호불호를 떠나, 완전무결한 영웅이 아닌 인간 안중근의 고뇌와 결단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