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상실보다 강할 수 있을까?

어린 왕자를 읽고

by 매니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었다. 어릴 적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나는 어린 왕자처럼 순수한 시선을 가진 적이 있었을까?


여우는 말한다.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야. 나는 너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고...”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이며 관계의 의미를 깨닫지만, 결국 이별의 순간을 맞이한다.

사랑은 삶을 충만하게 하지만, 동시에 상실의 아픔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사랑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까?


우리는 왜 사랑하는가?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길들이고 특별한 존재가 되는 과정. 하지만 이 말은 슬픔이 내포되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책임이란 결국, 떠나가는 존재를 지켜볼 운명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니까.


사랑하는 존재가 생기면 삶은 충만해진다. 하지만 그 관계는 결국 언젠가 끝나거나, 변하거나, 사라진다. 이런 아픔을 감당하면서까지 사랑해야 할까?


사랑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사랑하면 상처받는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장미를 사랑하면서도 혼란스러워했다.

장미는 그를 힘들게 했고, 자존심도 세고, 거짓말도 했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장미를 떠난 후에야 자신이 장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만약 어린 왕자가 장미를 길들이지 않았다면, 그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삶에서 장미는 그저 흔한 5천 송이의 꽃들 중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삶과 사랑했지만 상처받는 삶.

우리는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결국 사랑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밀밭의 색을 보며 어린 왕자를 기억하는 여우처럼,

반짝이는 별을 보며 어린 왕자를 떠올리는 조종사처럼,

사랑했던 순간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 흔적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흔적으로 남는다.

어린 왕자는 자기 별로 떠난다.

조종사는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날 수 없지만,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어린 왕자를 떠올릴 것이다.


이건 위로일까, 아니면 두려움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다면, 우리는 그 공허함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린 왕자는 조종사에게 말한다.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면 내가 그 별들 중에 어느 별에서 살고 있을 테니까

그 별들 중에 어느 별에서 웃고 있을 테니까, 아저씨에겐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으로 보일 거야.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가지게 되는 거지.

그리고 아저씨는 슬픔이 가라앉으면 나를 알았다는 게 기쁠 거야.

아저씨는 언제까지나 내 친구일 거고, 나와 함께 웃고 싶을 거야.” P.110


이별은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의 세계를 바꾸는 과정일 수도 있다.

비록 아픔이 크더라도, 그것이 남긴 흔적들은 우리의 삶을 다르게 만들어 놓을 수 있다.


사랑은 상처를 주지만, 의미를 남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사랑은 상실보다 강할까?’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길들여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무게를 점점 더 느끼게 되지만,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영원히 같은 형태의 관계로 남는 건 아니다.


어린 왕자도 장미를 두고 떠났다. 떠나고 난 후에야 그 사랑을 깨달았다.

우리는 살면서 관계가 바뀌는 걸 직접 경험한다.

한때 너무 소중했던 사람이 점점 멀어질 수도 있고,

어떤 관계는 유지하고 싶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달라지기도 한다.

때로는 떠나는 입장이 될 수도 있고, 남겨지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관계가 변하는 건 상실일까?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관계로 이어지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이별 속에서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않으면 공허할 것이다.

사랑하면 언젠가 이별하지만, 그것은 흔적으로 남아 삶을 바꿀 것이다.

사랑했던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어린 왕자가 전하는 메시지를 다시 떠올려 본다.

나는 여전히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지만, 사랑 없는 공허함으로 삶을 채우고 싶지는 않다.

사랑하는 이들과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싶다.


『어린 왕자』는 순수함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위해, 사랑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임을 깨닫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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