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정말 멋있어요!

구로역에서 만난 분들

by 매니아


친구와 영등포에서 만나기로 했다. 보통 집 앞에서 버스를 타는데 오늘은 좀 걷고 싶어서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7호선 가산 디지털단지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면 된다.



가산 디지털 단지에는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곧 열차가 들어와 문이 열리는데 지하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이 열차를 타지 않는 게 보였다. 열차가 출발하고 앞에 계신 분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아까 가산에서 기다릴 걸 그랬어.”



뭔가 잘못된 건가 하고 보니 내가 타고 있던 열차는 구로가 종착역이었다. 확인하지 않고 탄 내 실수였다. 열차는 구로역에서 멈췄고 종착역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나는 열차에서 내려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여전히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오디오북 음성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뒤를 돌아보는데 반대쪽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어르신이 나를 보고 계셨던지 말을 거신다.



“거기 아니야.”


“네?” 나는 이어폰 한쪽을 빼며 어르신을 쳐다봤다.


“거기서 타는 거 아니야.”


“아, 그래요? 그럼 영등포 가는 건 어디서 타요?” 내가 서 있던 곳은 분명 영등포 방향이었는데 가만 보니 아까 타고 왔던 열차가 이동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저기 계단으로 올라가서 다른 승강장으로 가야 해.”라고 하셨다. 구로역은 9개의 승강장으로 나뉘어 있어, 출발 열차를 잘 구분해야 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서 몇 번 승강장으로 가야 하는지 두리번거리는데 코레일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외국인 여자분에게 7번 승강장 위치를 알려 주고 계셨다. 내가 갈 곳도 7번이었다. 같은 곳을 향해 가는 그 외국인이 영어 울렁증이 있는 나에게 혹시라도 길을 물어볼까 싶어 살짝 긴장했다.



7번 승강장에는 열차가 출발하는 곳이었는지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어르신 한 분이 앉아 계셨다. 흰 머리카락이 많은 70대 후반 정도의 할아버지셨다.



“저, 이 열차 영등포 가나요?” 내가 묻자 “의정부행이니까 영등포 가요.”라고 알려주셨다. 열차 안으로 들어가는데 아까 그 외국인이 여전히 근처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 열차가 신도림을 가는지 물었다. 나는 여기가 맞다고 짧게 말했다. 외국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왔다.



열차 안에는 우리 세 사람만 있었다. 외국인은 신도림에서 다시 환승을 해야 하는 건지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무언가를 묻고 싶은 듯 보였다. 영어가 능숙했다면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때 앉아 계시던 어르신도 그런 느낌이셨는지 외국인에게 말을 거셨다. 외국인은 핸드폰을 내밀며 자신이 압구정역을 가야 하는데 신도림에서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묻는 것 같았다. 어르신은 핸드폰 화면을 짚어가며 찬찬히 알려주셨다.



그분의 말은 아주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대화에 전혀 무리가 없으셨다. 두 분이 나란히 앉아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 이 정도로 높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은 영어를 못하실 거라는 나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하며 머뭇거리는 모습이나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자전거를 타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더 익숙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계시는 저분은 외국인과 막힘없이 대화하며 친절하게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던 분인지, 어쩌면 지금도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계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그동안 너무 좁은 시선으로 어르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회적으로 노인은 젠틀하거나 유식하기보다는 시대의 변화에 뒤처져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짧은 순간이 내 생각을 흔들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나는 오늘 하루에 두 분의 어르신께 도움을 받았다. 조금 전만 해도 승강장을 잘못 알고 서 있다가 한 어르신의 친절한 안내 덕분에 제대로 위치를 찾았고, 방금도 열차가 영등포를 가는지 물으며 또 다른 어르신의 도움을 받았다. 어르신들은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분’들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여전히 능동적인 도움을 주고 계셨다.



단순히 연령에 따라 누군가를 규정짓는 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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