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 헨리크 입센

노벨연구소 선정 최고의 책 100

by 정앵무

인형의 집(A doll's house)

작가명: 헨리크 입센(Henrik Johan Ibsen)
작가 생몰연도: 1828년~1906년(노르웨이)
언어: 노르웨이어
초판 발행연도: 1879년


⭐️읽은 도서 정보: <인형의 집> 헨리크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출판사 민음사


★ 한줄 감상평 ★
문을 박차고 집 밖을 나서는 그녀는 더 이상 누구의 딸도, 아내도, 어머니도 아닌 그저 소중한 '나'일 뿐


인간은 태어날 때 둘 중 하나의 성(性)을 갖고 태어난다.
여성이거나 혹은 남성이거나.
(염색체 이상으로 희귀하게 발생하는 반음양 질환들은 이 글에서는 주제를 벗어나므로 논외로 함)

둘 중 하나의 성별이 다른 성별에 의해 억압받고, 다른 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두 인간이 동일한 선상에 놓이지 못하는 사회는 계몽되지 못한 미성숙한 사회다. 여전히 지구 곳곳에는 이런 뿌리 깊은 차별의 역사가 단단한 쇠사슬처럼 사람들을 옥죄는, 그런 후진적인 사회가 존재한다. 이런 미개함은 한 국가 전체가 해당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한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 안에서 이어져 내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유의 '차별'이 옳지 않다는 것에 동의한다. 온갖 종류의 차별을 향해 '그것에 반대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시대에 나는 살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만약 지금으로부터 불과 1세기 전에 태어났다고 한다면...


삼종지도: 여성은 결혼 전에는 아버지를, 결혼 후에는 남편을, 남편 사후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여성 지위 규범


그저 여성은 일생 내내 남자의 그림자 밑에서 애 낳고 집 안에 딱 붙어서 살림이나 하는 게 삶의 최대의 과업이자 덕목이며 남편, 아들내미 뒤치다꺼리나 해주다 죽는 그런 존재로 살다가 가는 걸 당연시하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나'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못하고 그저 다른 누군가를 위한 도구적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그런 삶에 물음표조차 던지지 못하는 사람. 그러나 조선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삼종지도 같은 가부장적 사상을 당연히 여긴 것을 두고 그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사람은 항상 자신이 속해있는 환경과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그것들을 토대로 사고하기 마련이다. 이 틀을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하기란 일반적인 범인(凡人)들의 머릿속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이들은 고상하게는 혁명가 또는 선지자 더 나아가서는 또라이, 미친새끼 등등으로 불린다. 그리고 어느 집단이든, 이런 타입의 인간 유형은 아주 소수다. 어쨌거나 분명한 건 이런 혁명가(혹은 또라이)들에 의해 세상은 진보한다는 점이다.

노르웨이 출신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은 전통적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그저 인형의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하지 못했던 여성의 해방적 선언 같은 페미니즘의 선구자적인 작품이다. 1879년 코펜하겐 왕립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현재까지도 꾸준히 전 세계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작품이며,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작품 속 주인공 노라의 이름을 따서 노라이즘(Noraism)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노라이즘(Noraism): 남녀 불평등의 인습에 반항하여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지위를 확립하고자 하는 주의. 또는 그런 운동.

<인형의 집>은 국내에서도 여러 번 연극 무대에 올려졌다. 사진은 2018년 예술의 전당 개관 30주년 기념으로 공연되었던 연극 <인형의 집> 포스터


이 작품은 총 3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1막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선물 꾸러미를 들고 흥얼거리며 집 거실로 들어오는 주인공 노라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노라는 토르발 헬메르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이며 결혼 8년 차의 젊고 발랄한 주부이다. 그녀의 남편 헬메르는 새해부터 은행 총재로 승진을 앞두고 있다. 헬메르는 노라를 '종달새', '다람쥐' 등으로 부르며 치아에 안 좋다며 과자를 못 먹게 하고, 그녀를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고 순진한 아이인 듯이 대한다. 둘의 관계는 동등한 위치의 두 인간이라기보다는 마치 노라가 헬메르에게 종속된 듯한, 주인과 소유물 간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헬메르는 노라를 보살펴주고 보호해 주고 소중히 다뤄주지만 이는 그녀가 헬메르의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취향대로 곱게 꾸며놓고 상자에 넣어놓는 인형처럼 노라는 그렇게 헬메르의 인형이 된다. 그의 울타리 안에서 노라는 남편이 원하는 예쁜 아내, 좋은 엄마, 단란한 가족의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이런 노라는 남편에게 한 가지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과거 헬메르가 중병에 걸렸던 시절, 그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그녀가 헬메르의 은행에서 일하던 변호사 크로그스타드에게 돈을 빌렸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이때 자신의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하여 차용증을 작성하고 돈을 빌린다. 헬메르는 자존심과 사회적 평판을 무척 중요시 여기는 인물이기에, 노라는 그에게 이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크로그스타드는 직장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하고 노라에게 자신이 잘리지 않도록 남편 헬메르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노라가 자신에게는 그런 힘이 없다고 거절하자, 크로그스타드는 그녀의 비밀을 모두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 그러던 중 남편의 친구인 랑크 박사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는 남편의 명예가 실추될까 두려워한다.

3막에서 결국 크로그스타드의 편지로 헬메르는 그녀가 서명을 위조하여 돈을 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노라에게 거짓말쟁이, 범죄자라며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자신도 범죄 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오해를 받을 것이라며 세상의 눈을 두려워한다. 그는 노라에게 어떻게든 이 사건을 축소시켜야 하므로 표면적으로는 둘 사이가 전과 똑같은 것처럼 행동하되, 아이 양육을 그녀에게 맡길 수는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녀는 그동안의 결혼 생활이 모두 잘 꾸며진 인형의 집과 같은 허상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죽을 위기에 처한 남편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돈을 빌렸지만 이에 대한 남편의 반응은 사회적인 평판이 깎일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뿐이다. 그에게 단지 중요한 것은 남들 눈에 비치는 단란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정의 모습이다. 헬메르의 취향대로 꾸며진 귀엽고 순진하며 그의 말을 잘 듣는 순종적인 아내, 부부간 사랑의 징표인 아이들, 번듯한 직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든든한 남편. 본인이 생각하는 이러한 완벽해 보이는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가 깨어질 위기에 처하자 헬메르는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겉으로는 이 가족에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할 것을 노라에게 요구한다. 그에게 '노라'라는 한 인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헬메르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이 예쁜 인형의 집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해 줄 아내와 아이들의 엄마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것이 '노라'인지는 중요치 않다.


당신은 모든 것을 당신 취향대로 꾸몄고, 그래서 나는 당신의 취향을 내 것으로 만들게 됐죠. 아니면 그런 척했던 것이었거나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두 가지 모두였던 것 같아요. 이랬다 저랬다 했지요 ......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행복한 줄 알았죠. 하지만 한 번도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 그래요. 재미있었을 뿐이죠.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그저 놀이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친정에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 토르발, 그게 우리의 결혼이었어요.
115~116p


헬메르는 정말 진정으로 노라를 사랑한 것일까? 그에게 노라는 어떤 의미일까


노라는 그동안 자신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던, 자신에게 주어졌던 그 모든 역할과 믿음에 물음을 던진다. 가정이라는 단란한 그녀의 울타리, 동시에 그녀를 가둬두었던 그 경계에서 노라는 스스로를 풀어준다. 그리고 마침내 선언한다.

헬메르: 집과 남편과 가정을 버리다니! 그리고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는 생각도 안하다니!
노라: 그것까지 고려할 수는 없어요. 나는 이렇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에요.
헬메르: 저런, 기가 막히는군. 그렇게 당신의 거룩한 의무를 저버릴 수 있다니.
노라: 나의 거룩한 의무가 뭔가요?
헬메르: 그걸 내가 말해야 아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아닌가!
노라: 내게는 다른, 그만큼이나 거룩한 의무도 있어요.
헬메르: 아니, 없어. 대체 무슨 의무지?
노라: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이에요.
헬메르: 당신은 우선적으로 아내이며 어머니야.
노라: 그 말은 더 이상 믿지 않아요. 나는 내가 우선적으로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믿어요. 최소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토르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이 옳다고 할 거예요. 그리고 책에도 그런 비슷한 말들이 있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로 만족할 수 없고 책에 쓰여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어요.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해요.
118~119p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책임.
모든 일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한다는 노라의 이 말은 너무나 짜릿하다. 노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 책들에 쓰여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스스로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지점에서 그녀는 더는 헬메르 부인이 아닌 '혁명가 노라'가 된다. 노라의 이 말은 단지 성 역할의 차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우리에게 부여된 모든 종류의 고정된 역할과 차별에 확장해서 적용할 수도 있겠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통념들 중 정말 당연한 것이 있을까? 왜 나는 의심해 보지 않았던가.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조차도.


공교롭게도 바로 전에 읽었던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와 <인형의 집> 간의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로 둘 다 연극 공연을 위한 희곡이라는 점, 그리고 페미니즘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일부러 묶어서 이렇게 읽은 건 아닌데...오호...순서 선정 굿ㅋㅋㅋㅋ
페미니즘은 본래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와 평등을 추구하는 사상 및 운동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아주 이상하게 곡해되어서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상황이 매우 개탄스러울 뿐이다. 부디 이 또한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의 한 과정이길 바란다. 남성과 여성을 떠나, 우리는 모두 똑같은 인간이다. 어느 한쪽이 우월하지도, 더 못나지도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로우며 존중받아야 할 존재다. 내가 이해한 페미니즘은 이것이다.

아직 인형의 집에서 나오지 못한 세상의 모든 노라들이 어서 나오길 바라며. 당신은 그 누구의 인형도 아닙니다!!!

끝으로 인형이 아닌, 진실한 자신이 된 노라가 좋아할 것 같은 노래로 마무리함


https://youtu.be/YDWe_Ntqa0o?si=sUkrcHLw68m2wNWW

김소현 - 나는 나만의 것(Ich Gehör Nur Mir) (뮤지컬 '엘리자벳' 中)

난 싫어 이런 삶
새장 속의 새처럼
난 싫어 이런 삶
인형 같은 내 모습
난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야
내 주인은 나야

난 원해 아찔한 외줄 위를 걷기를
눈부신 들판을 말 타고 달리기를
난 상관없어 위험해도
그건 내 몫이야

그래 알아 당신들 세상에선
난 어울리지 않겠지
하지만 이런 날 가둬두지마
내 주인은 바로 나야

저 하늘 저 별을 향해서 가고 싶어
한 마리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갈래

난 나를 지켜나갈 거야
난 자유를 원해

난 싫어 그 어떤 강요도 의무들도
날 이젠 그냥 둬 낯선 시선들 속에
숨이 막혀 버릴 것 같아
난 자유를 원해

당신들의 끝없는 강요 속에
내 몸이 묶인다 해도
내 영혼 속 날갠 꺾이지 않아
내 삶은 내가 선택해

새장 속 새처럼 살아갈 수는 없어
난 이제 내 삶을 원하는 대로 살래
내 인생은 나의 것
나의 주인은 나야
난 자유를 원해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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