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즐거움을 깨달아버렸다.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 속에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은 “즐거움”이다.
즐거움
joy, pleasure, enjoyment (마음에 들어 흐뭇하고 기쁜다)
행복
happy, blessed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
이건 “행복”과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단어로 그 어떤 순간에도 “과연 나는 지금 이 순간 즐거운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내게 던져보면 지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일종의 리트머스지 같은 것이다. 거침없는 웃음에 휩싸여있지만 마음은 불편한 경우도 있고, 현재 불안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행동에서 기대감을 예상하면 즐거운 경우도 있다.
순간 바로 판단을 내려볼 수 있기를 바라지만 한참 지난 뒤 다시 떠올려볼 때 즈음에 즐거울 수도 있다.
그래서 내 삶을 이끄는 “즐거움”이라는 단어는 내 긴 여정에서 순간순간 판단을 할 수 있는 척도 같은 것으로 행복이라는 의미심장한 단어와 다르고 또한 쾌락이라는 유의어와는 더욱 다르다.
어제도 5킬로미터를 뛰었다. 자신의 두발로 쉬지 않고 30분 정도를 뛰어본 사람이 우리나라 인구 중 얼마나 될까? 이런 생각을 떠올리면 나의 달리기는 약간은 숭고하다고까지 느껴진다.
체력이 좋거나 참을성이 좋아 한방에 5킬로미터(보통 6분 페이스로 뛰면 30분 걸림)를 뛰는 사람이 있다. 보통 이렇게 뛰고 나면 다시는 안 뛰겠다는 생각이 들고 다음날 온몸이 쑤시고 아파진다. 이런 사람들의 달리기는 인내의 시간이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하나의 과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5킬로를 한 번에 못 뛰는 나 같은 사람은 5킬로를 뛰기 위해 많은 연습과 노력을 쌓는다. 500미터, 1킬로미터, 2킬로미터, 3킬로미터 ... 이런 지난한 반복의 과정을 거치며 어느 날 5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뛰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이 과정이 꼬박 3개월 걸렸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정말 나도 “러너스 하이”라고 부르는 쾌감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30분 이상 달리기를 할 때 그 고통을 상쇄하기 위해 분비되는 신경 물질(베타 엔도르핀이라는 설이 있음)에 의한 경쾌한 쾌감인데, 혹자들은 쾌감의 최고봉이라고 일컫는다. 성취감도 여러 번 맛보았고, 그 외 다른 육체적 정신적 쾌감도 느껴본 나로서는 러너스 하이라고 부르는 이 상태에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이건 정말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피곤한 몸을 일으켜 운동화 끈을 매고 집 밖을 나서야 하는 어찌 보면 나 자신에게는 가장 큰 허들을 넘어야 했다. 많이 시도했고 많이 실패했다. 특히 운동이라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안될 것 같다며 포기한 게 수십 차례다.
이번에 내가 굳은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내 즐거움을 지속시키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사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건 항상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일어나서 일련의 과정을 끝내고 책상에 앉는 순간 나는 너무 즐겁다. 이제 책을 읽기만 하면 되고,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출근 전의 이 두 시간이 정말 나에게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달콤한 시간이다.
그런데, 이런 내 삶 때문에 자꾸만 부모님과 주변에서 걱정이 많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은 떨어지게 마련이고, 열심히 하는 모습 그리고 스스로 즐거운 것은 좋지만, 언제까지 자신의 체력을 과신하며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모르고 달려버릴지 모르는 자식을 걱정하는 것은 가족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체력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고, 운동을 통해 체력을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자꾸만 미루고 있었다.
특히 두 번째 책을 출간하고는 고생했다는 말 뒤에는 계속 꼬리표가 붙었다. “쉼”이라는 것, “휴식”이라는 것 그리고 “건강”이라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은 그것을 잃어본 사람만이 깨닫게 된다. 네 분의 부모님 모두 일흔이라는 나이를 넘기며 그동안 쉼 없이 걸어온 인생에 버텨주던 몸이 작게 또는 크게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치료를 받아 생명에 치명적인 지장은 없지만 예전처럼 건강을 절대 과신하는 그런 입장에서는 한발 물러섰다. 그 관점에서 본 나라는 존재는 어쩌면 사람마다 정해져있는 연료를 일찍 소진해버리는 자식인 것 같아 걱정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건강해지기로 했다. 그리고 그 건강의 목표를 내 두 다리로 땅을 밟고 뛰는 것으로 정했다. 그것도 30분 동안 쉬지 않고 말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몇 번을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며 뛰다 보니 달리기를 멈추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퇴근 후 집에 들어가서 쉬다가 운동을 하러 간다는 부분이라는 걸 알아챘다. 분명 운동화를 신고 나가면 뛰게 되어있고, 뛰는 순간은 숨이 차고 헐떡거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다리가 아프지만 정신은 맑았고 머릿속 모공에서 차오르는 땀을 느끼면 즐거웠다. 시간을 늘리던 어느 순간 머리에서 구렛나루 밑으로 내려오는 땀을 느낄 때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느꼈다. “와!! 진짜 뛰고 있구나. 운동이 되고 있구나.” 그 순간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 물론 이 순간이 러너스 하이는 아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집에 들어가서 소파에 앉는 순간 달리고자 하는 마음은 쉬고 싶다는 마음 앞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조금 일찍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운동복을 갈아입고 집을 나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달린다고 선언을 하고 조금 일찍 회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무조건 집을 나섰다. 그리고 뛰었다. 그게 벌써 석 달이다.
즐겁다. 점점 시간이 길어지는 게 느껴지고 지난번보다 내 숨이 덜 차는 것을 몸이 느끼면서 희열을 느낀다. 달리면서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정말 즐겁다.
이렇게 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정말 내 삶에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던 버킷리스트 같은 것이었는데 이루었다. 그리고 이젠 30분이 아닌 1시간을 꿈꾼다. 1시간을 뛰게 만드는 코스를 검색하는 나를 보면 대견하다.
난 항상 이렇게 즐거움을 먹고 자란다. 이번 즐거움은 달리기였다. 다음 즐거움은 몇 가지를 진행 중이고 또한 준비 중이다. 그중 한 가지는 지금 진행 중인 유튜브이고 이것도 완전 재미있다. (오늘도 한 편 업로드된다.)
이렇듯 난 즐거움이라는 확실한 목표를 통해 내 삶의 순간을 가늠하고 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 작가 김경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