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잠에서 깨면 처음 드는 생각이 있다.
“지금 몇 시지?”
몇 번 얘기한 적 있지만 새벽 알람을 맞춰놓고 잠을 자고 있지만 항상 알람이 울리기 1~2분 전에 눈을 뜬다. 습관이다.
처음에는 알람에 맞춰 눈을 뜨는 것 자체가 고통/고난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덧 내 몸은 새로운 내 생활에 적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기하지만 참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 습관이 참 대단한 것은 안되던 것을 되게 한다는 것이다.
처음 입대하던 날 밤. (1997년 3월 3일)
추운 날씨라서 내무반에 히터가 심하게 돌았다. 밤 10시 잠자리에 들기 전 근무 표가 할당되었다. 다행히 나는 첫째 날 불침번이 없었다. 행정병 한 명이 들어와 커다란 주전자에 들어있는 물을 바닥에 흥건하게 뿌렸다. 히터 때문에 공기가 너무 건조해져 목이 칼칼해지고 코가 아플 것을 대비한다고 했다. 그런데 물을 너무 많이 뿌려 시멘트 바닥이 찰방찰방해지는 수준이었다. 마치 수채구멍이 막혀 물이 안빠지는 화장실 같이.
...
목이 말라 잠을 깼다. 시계를 봤는데 새벽 2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내무반의 주전자가 멀리 있었다. 어쩔 수없이 침낭 속을 나와 슬리퍼를 신었다. 그리고 놀랬다. 바닥이 바짝 말라있었다. 그리고 식수가 들어있는 주전자를 들었는데 텅 비어있었다. 옆 동료들도 목이 말랐나보다.
화장실을 가면서 물을 찾아서 마시기로 했다. 컴컴한 내무반 문을 열자 복도의 밝은 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복도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화장실을 가고 있었다.
“뭐지?”
복도에는 식수대가 없었다. 앞사람에게 물어봤지만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화장실 물은 마시지 말라고 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손을 씻는데 수도꼭지 앞에 글씨가 쓰여있었다.
[식수 금지]
나는 타는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손바닥에 차가운 물을 가득 받아 입에 가져다 댔다. 누군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마시지 말랬잖아!”
목이 마른데 물이 없다고 말했더니, 그래도 먹지 말라고 했다.
“이게 군대구나! 현실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 그날 이후 나는 확실치 않은 것은 절대 손대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할 때가 있었다. 1등이 되고 싶었고, 옆 사람보다 내가 더 낫다는 소리를 듣기를 원했다.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 뒤, 담임선생님이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친구를 상담실로 불렀다. 우리 네 명이 초등학교 6학년때 반장이었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1학년 1학기는 선거가 없기 때문에 4명 중 1명이 반장을 2명이 부반장을 나머지 1명이 총무부장을 하라고 했다. 나와 같은 학교 출신이 둘이라 우리는 이미 친한 사이였고 한 명만 잘 모르는 녀석이었다. 당시는 키 순서로 번호를 정했는데 차례대로 7 / 10 / 12번이었고 난 46번이었다. 다들 키가 컸다.
선생님께서 반장은 키가 컸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난 일단 반장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때 다른 학교 출신 한 녀석이 부모님께서 중학교부터는 학급임원 하지 말라고 했다며 자신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녀석이 총무부장을 하기로 했고, 난 부반장이 되었다.
첫 시험에서 우리 넷이 반에서 1~4등을 나눠가졌다. 난 3등을 했다. 담임 선생님은 반 등수대로 좌석을 배치시켰다. 교탁을 중심으로 2분단과 3분단의 첫째 줄이 1등과 2등의 자리였고 두 번째 줄은 3등과 4등의 자리였다. 1등의 짝꿍은 26등이었다. 우리 네 명은 맨 앞의 4자리를 계속 바꿔가면서 친해졌다.
1학기 때는 한 번도 1등을 하지 못했는데, 2학기가 되면서 내가 계속 1등을 했다. 그때는 1등이 정말 하고 싶었다. 그래서 문제집을 3권씩 사서 풀어가며 공부했다. 시간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고 공부량만큼 성적을 받았다.
...
10년이 훌쩍 지나 녀석들 중 몇 명을 다시 만난 적이 있다.
우리 네 명 중 한 명은 삼수를 해서 서울대를 갔다.
또 한 명 그림을 잘 그리는 녀석은 연대를 갔다.
머리가 좋았던 녀석은 수능을 잘 봤다며 고대를 갔다.
1학년 때 녀석들 중 공부를 젤 잘했던 나는 성대를 갔다.
그리고...
키가 젤 컸던 녀석은 키가 190이 넘었고, 그다음으로는 내 키가 컸다.
인연이라는 것이 참 묘한 것이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 아닌 녀석은 만나지 못할거라 생각했었는데, 우연히 친구 대학교 과모임에 놀러를 갔다가 부산 출신의 여자 후배를 알게 되었는데,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오빠가 나랑 같은 중학교 출신이고 나이도 같다고 했다. 그녀의 오빠가 바로 1학년 1학기 총무부장을 했던 녀석이었다.
그냥... 이것저것 정리를 해보았다.
생각을 쓰는 것, 다시 말해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누군가는 자신의 일상을 정리하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그러니 기억을 복기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더 가혹한 작업일 수 있다.
나는 틈나는 대로 조금씩 내 삶의 파편들을 모으고 있다. 물론 내 기억 속에서 아주 주관적으로 존재하는 나만의 이야기지만 이것을 문자로 표현해두는 것은 내게는 하나의 의식 같은 즐거움이다.
두서없이 책을 읽을 때 ‘이 책들이 과연 내 삶에 도움이 될까?’ 고민했던 것처럼,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생각이 자꾸든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의미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이글도 다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고 믿는다.
결국 내안의 믿음이 나를 이끌고, 태도가 내 본질이며, 습관이 내 인생이다.
- 작가 김경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