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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r 06. 2020

[Day 5] 사진이 내게 건네는 말

프레임 속 세상을 들여다 보며 얻게 된 새로운 시선



사진은 내게 우연처럼 다가왔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수동 카메라가 한대 있었다. 아버지 장롱 속 가방에 들어있는 묵직하고 비싸 보이는 수동 카메라였다. 가끔씩 아빠 몰래 끄집어 내 이리저리 만져보고 눈을 대보곤 했다.


고이 모셔두었던 카메라는 군대를 제대하면서 내 손에 쥐어졌다. 필름을 하나 넣고, 카메라를 메고 집 밖을 나서면 부러울 게 없었다. 뷰파인더 속 세상은 평범해 보이던 것들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만화경 같았다.


카메라는 내 분신이었다.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엄마가 내게 소형 카메라를 하나 선물해 주셨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자동 카메라였다. 친구들과 유럽을 걸으며 10통이 넘는 필름을 소화했다.  조그마한 뷰 파인더에 보이는 난쟁이 세상이었지만 시간과 추억을 가두기엔 충분했다.


미국에 연수를 떠나면서도 이 카메라와 함께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손에 들려있던 멋진 디지털카메라를 보고선 내 카메라가 너무 초라해 보였지만, 인화된 사진을 받아볼 때면 다시 애착이 생겼다.




프레임을 통한 세상


결혼을 준비하면서 어릴 때 아버지의 장롱 속 카메라 같이 무겁고 커다란 카메라를 샀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에 관심이 폭발했고, 사진 촬영에 대한 이론과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전의 내 사진이 기억 저장 수단이었다면, 그때부터 내 사진은 프레임으로 보는 내 관점이 되었다.  


수천 장의 사진을 찍으면서 아내와 결혼했고, 셔터 박스가 닳으면서 아들과 딸이 태어나 자랐다. 중요한 순간마다 그들을 내 프레임에 담으면서 순간을 축적해 나갔다.


더는 내 프레임 속에 담기길 싫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사진과 인생이 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이제는 사람보다 사물에 더 관심이 생겨난다. 떠오르는 태양을 담고, 부서지는 파도를 찍는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 조각, 삐죽 튀어나온 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뷰 파인더로 이런 것들을 관찰하다 보면 스쳐 지나갔던 사소한 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나를 만난다.





보는 눈이 변하면 생각이 변한다.


지금 내 책상에는 카메라가 한대 놓여있다. 손때가 묻어있는 내 두 번째 눈이다. 이 녀석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얼마 전부터 무턱대고 눌러대던 셔터를 자제하기 시작했다.


한 장의 사진 속에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점점 자라나 내 글감이 되고, 내 말이 되고, 내 사상이 된다.


의미 없는 것은 없다. 단지 내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뿐이다. 사진은 내게 그 모든 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라고 일깨운다.


나는 사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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