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섰다. 매일 현관문을 열고 내딛는 걸음이지만 그날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을 흐리며 현관문을 열고 곧장 걸어가는 내 걸음에는 약간의 긴장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출발은 참 기분 좋은 단어다.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서 움직이는 느낌을 맛볼 수 있다. 나는 이런 출발의 맛에 중독되어 여행을 떠난다. 출발은 도전을 요구한다. 도전은 시도라는 행동을 이끌고 행동은 결과물을 만든다. 결과물은 다시 나에게 출발을 부추긴다. 이 순환의 사이클 속에 내가 존재한다.
매번 같은 선에서 출발하는 것은 익숙함을 만든다. 익숙함은 습관을 만들지만 때론 나태를 만들기도 한다. 이 동전의 양면 같은 결과물 속에서 새로움이라는 설렘을 찾기 위해 나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출발선과 도착점은 같지만 과정이 다른 활동이다. 매번 달라질 과정을 기대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출발선으로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목적지를 정하는 것이 여행이다. 갈 곳을 정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여행은 이미 시작된다. 지도를 펼치고 지금 내가 있는 곳과 목적지와의 거리를 눈으로 살피면서 그 두 지점 사이에서 생기게 될 새로운 일을 상상한다. 필요한 잠자리, 먹을 음식, 입을 옷, 이렇듯 삶에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한껏 들뜬다.
여행은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나를 내던지면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돌발하는 상황에 당황한다. 이 당황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판단을 하고 결정하고 준비된 계획을 변경한다. 이렇듯 여행은 즉흥을 부추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경험된 방법으로 즉흥을 즐긴다. 의도된 즉흥 속에서 우리는 준비된 여행을 하는 것이다.
도착은 안정을 가져다준다. 안정은 심장 박동 수를 낮추고 여유로움을 선물한다.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갈 것을 알지만 한 번 경험해 본 일이라서 긴장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도착은 나에게 자유를 건넨다. 익숙지 않은 잠자리, 불편한 환경이지만 이상하리만큼 편안하다. 몸은 피곤하다고 말하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청량감 넘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한다.
계획했던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끝은 항상 아쉽다. 하지만 돌아갈 그곳에 대한 기대도 있다. 새 옷을 입어 익숙하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늘어지고 무릎 나온 츄리닝이 편한 건 사실이다. 돌아갈 곳을 그리다 보면 지금 이 순간에 미련이 남는다. 미련은 "다시"라는 생각을 일구고 나에게 약속을 건넨다. 그래서 우리는 또 여행을 계획한다. 그렇게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