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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l 10. 2020

이름이 가지는 무게

| 이름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내 기억 속에서 나는 태어날 때부터 “김경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아빠가 “경태야”라고 불렀고, 엄마가 “경태야”라고 불렀다. 누나도 할머니도 나를 “경태야”라고 불렀고 나는 그 이름에 반응했다.

내 이름이 싫었던 적이 있다. 멋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촌스럽다고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주 평범하고 항상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내 이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김경태”라는 사람 중 한 명이 아닌 나 “김경태”라는 인간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하면서다.  그러면서 나는 내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들 녀석 때문이다. 예전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아내가 아들을 낳았을 때 이름을 뭘로 정할지 고민했었다. 부모님께서 나름 유명한 철학과 교수에게 의뢰했고, 생년월일시를 넣어지은 이름을 몇 개 받았다. 그리고 아내와 내가 선택한 것이 지금 아들의 이름이다.

이름을 정하고서는 아기에서 “민제”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꽤 어색했다. 출생신고를 하고서는 등본을 떼어봤을 때 나와 아내 이름 아래에 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녀석이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계속 어색했다.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걷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그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불렀다.

나는 생각했다.

“본디 생명은 그 자체로 무언가 불러지는 의미(이름)가 있을 것 같은데, 아내와 내가 이렇게 잠시 상의해서 결정한 것이 녀석이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이름이 되어도 되는 걸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녀석은 이름과 어울려 보였다.

내 생각이 변한 걸까? 녀석이 이름과 닮아가는 걸까?
그러면서 이름이라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에게 각인되는 나라는 존재의 첫인상은 생김새와 함께 따라붙는 이름이다. 이름을 통해 타인은 존재를 인식하고, 그 존재를 상상한다.

비단 사람 이름뿐만이 아니다. 회사의 이름(법인), 책의 이름(제목), 글의 이름(제목), 물건의 명칭 등도 모두 저마다 이름으로 특별하게 존재한다. 그 특별함은 스스로 부여한 경우도 있고, 부여받은 경우도 있다. 이름이 정해지는 순간 모든 것은 가치가 매겨진다. 그래서 이름은 그 자체로 무거운 존재감을 가진다.


강연 무대와 같이 여러 사람 앞에서 나를 소개할 때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서 “안녕하십니까. 김경태입니다.”라고 말한다. 그 순간 나는 그들에게 김경태라는 인물로 각인되고 한 존재로 인식된다. 나라는 존재속에 내재된 수많은 그 무엇이 모두 합쳐진 것들을 그들은 “김경태”라는 세 글자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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