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적인 글 아닙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라파엘의 집>이 불현듯 떠올랐다.
요즘 정치와 언론 때문인가?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이 서지 않는 아비규환의 이 상황에 나는 예전에 읽었던 김훈의 #라파엘의집 칼럼이 떠올랐다.
지식인, 언론인, 정치인들이 연일 자신의 주장이 맞고 상대방은 틀렸다며 비난 일색인 지금 이 순간에도 <라파엘의 집> 아이들은 여전히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김훈의 말처럼, 나 역시 대학생 시절 자주 들렀던 인사동의 술집에서 친구들과 의기투합하며 더 멋진 삶과 더 밝은 세상을 기대하며 술 취해 비틀거렸다. 그리고 라파엘의 집을 스치듯 지나갔다.
유독 종로에는 신호등마다 모금함을 든 사람들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친구들과 우스개라며 “저 사람들 알고 보면 모금해서 자신들 배불린다더라.”라는 주워 담지도 못할 말을 지껄이곤 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인간의 본성은 숨겨져 있는 듯 보이지만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래서 더욱 라파엘의 집 칼럼이 비수처럼 읽힌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참고>
라파엘의 집 - 한겨레 2002.03.08일 자
서울 종로구 인사동 술집 골목에는 지식인, 예술가, 언론인들이 몰려들어 언어의 해방구를 이룬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논하며 비분강개하는 것은 그들의 오랜 술버릇이다.
그 술집 골목 한복판에 ‘라파엘의 집’이라는 불우시설이 있었다. 참혹한 운명을 타고난 어린이 20여 명이 거기에 수용되어 있다. 시각/지체/정신의 장애를 한 몸으로 모두 감당해야 하는 중복장애아들이다. 술 취한 지식인들은 이 ‘라파엘의 집’ 골목을 비틀거리며 지나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동전 한 닢을 기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파엘의 집’은 전세금을 못 이겨 2년 전에 종로구 평동 뒷골목으로 이사 갔다.
‘라파엘의 집’ 한 달 운영비는 1200만 원이다. 착한 마음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이 1천 원이나 3천 원씩 꼬박꼬박 기부금을 내서 이 시설을 16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후원자는 800여 명이다. ‘농부’라는 이름의 2천 원도 있다. 바닷가에서 보낸 젓갈도 있고 산골에서 보낸 사골뼈도 있다. 중복장애아들은 교육이나 재활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안아주면 온 얼굴의 표정을 무너뜨리며 웃는다.
인사동 ‘라파엘의 집’은 술과 밥을 파는 식당으로 바뀌었다. 밤마다 이 식당에는 인사동 지식인들이 몰려든다.
- 김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