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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r 09. 2020

[Day 8] 고향에 가면 ...

나에게 부산은 ___ 이다


내 고향 부산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사춘기를 보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산이 아닌 타지에서 보낸 물리적 시간이 더 길지만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듯, 내 머릿속에서 항상 그리워하고 돌아가야 할 그 정착지는 언제나 부산이다. 

내 할머니가 사셨던 곳, 그리고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 지금 내 곁에 잠들어 있는 아내가 살던 곳, 또 그녀의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 모두 부산이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 새로운 길, 높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당시 걷던 길들이 사라졌어도 여전히 부산은 낯익다. 

시간에 비례해 추억이 쌓인다고 하지만 어릴 때 보냈던 시간의 농도가 짙었던 탓인지, 지금 18년째 살고 있는 천안과 18년을 살고 대학을 위해 떠났던 부산의 가치는 시간에게 미안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 내가 부산에 갖고 있는 이 정서는 아마도 내 아이들은 천안에 갖게 되겠지.




요즘은 1년에 서너 번 부산에 간다. 아니 "머문다"라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다. 

지금 부산은 어릴 때 내가 알던 부산과 사뭇 다르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광안리, 해운대, 수영, 동래 쪽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새로운 길들이 많이 생겼고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섰다. 어릴 때 걸어서 학교 다니던 길들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긴 하지만 이제 그 길은 더 이상 예전에 내가 걷던 큰 길이 아닌 작은 골목 같다. 그래도 옛날 색이 아직도 남아있는 곳들이 여전히 있다. 길을 지나다 우연히 보게 된 어린 시절의 친구 집, 가게, 학교, 공터, 목욕탕들이 색을 바꾸고 간판을 다르게 달고 있지만 여전히 내 눈에는 빛바랜 추억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부산에 가면 항상 가고 싶은 곳을 몇 군데 정해둔다. 시기마다 계절마다 조금씩 장소가 변하긴 하지만 겹치는 곳이 많다. 부산을 들를 때마다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찾는 곳은 황령산 전망대와 광안리 바닷가다. 처가에서 10분 정도면 도착하는 이곳을 나는 부산을 들를 때면 매번 새벽에 혼자서 찾는다. 차를 몰고 굽이진 황령산을 오르다 보면 정상 근처에 조그마한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차를 세우고 내려 바다에서 떠오르는 부산의 해를 마주한다. 이곳은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때론 음악을 들으며, 때론 책을 읽으며, 때론 희망을 읊조리며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한다. 차갑고도 시원한 바람과 아름다운 새소리가 귀에 머물고 피톤치드 가득한 숲속의 나무 냄새가 나를 정화시키는 느낌이다. 보통 이곳에 한 시간가량 머물며 일출을 보며 사진을 남긴다. 

그리고 다시 차를 몰아 광안리 바닷가로 내려간다. 어릴 때는 없었지만 지금의 부산의 간판이 된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백사장을 걷는다. 해변을 따라 걷는 사람, 달리기를 하는 사람, 산책을 하는 사람, 바다를 즐기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잠에서 채 깨지 않은 바다를 맞이하는 모습이 좋다. 나는 백사장을 거닐며 내 발자국을 본다. 모래 사이에 숨어있는 조개껍데기를 줍기도 하고 먹이를 찾는 갈매기를 관찰하기도 한다. 모래를 계속 쓸고 있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조그맣게 부르며 그렇게 걷는다. 

이렇게 보내는 부산에서의 새벽시간이 너무 좋다. 그 시간과 함께하는 그 순간 나는 부산이 고향임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낮이면 먹거리를 찾거나 볼거리를 찾아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선다. 연애시절 자주 가던 달맞이 언덕의 찻집은 이젠 너무 혼잡해져서 가끔 들르는 곳으로 바꿨다. 대신에 중고서점과 테라로사가 들어선 망미동을 찾는다. 가끔 보수동에 들러 헌책방을 구경하고, 항구 앞 시장에 들러 외국에서 들어온 신기한 가구나 소품들을 구경한다. 

고향은 익숙한 맛으로 나를 반기는 참 고마운 곳이다. 세상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이 가장 맛있는 이유는 엄마의 맛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물론 자식을 잘 먹이고자 하는 엄마의 정성과 사랑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엄마의 음식 맛처럼 부산의 곳곳에는 내게 익숙한 맛집이 많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남포동을 나올 때면 들렀던 18번 완당집, 호떡, 돌고래 순두부, 시장에 파는 통닭, 냄비우동, 할매 칼국수, 광안리 시래기 해장국, 부산대학교 앞 돼지국밥, 어릴 때 그렇게 싫어했던 석대 추어탕, 사해방 찐만두,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앞 부광 반점 볶음밥과 희망 통닭. 그 외에도 참 많은 먹거리들이 내게는 너무 익숙하다. 가끔 부산에 들르다 보니 이런 추억의 맛집보다는 호텔 뷔페나 유명 고깃집, 횟집에 들러 부모님과 식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간을 내 애써 찾아가 보는 즐거움은 고향에 대한 내 예의다.


초 중 고등학교 12년을 보내며 사귀었던 그 많은 친구들 중 이제 부산에 남아 있는 친구들은 몇 명이 되지 않는다. 나처럼 일을 찾아, 삶을 찾아 다들 뿔뿔이 흩어져 이제는 연락해 볼 친구들이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래도 부산에 가면 항상 연락을 하고 얼굴을 보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 만나 건네는 소주 한 잔과 선물 같은 추억 묻은 대화는 내가 아직도 부산 사람임을 그리고 아직도 부산을 너무 좋아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한다. 



이제 나에게 부산은 그리움이 8할인 것 같다. 얼마 전 아내에게 은퇴하면 부산으로 돌아가 살자고 말했다. 아내는 지금 품에 안고 있는 자식들이 우리의 품을 떠날 때 즈음에 부산에 가자고 했다. 아마도 부산으로 돌아갈 때 즈음엔 지금 부모님들이 살고 계시는 근처로 가게 되겠지. 신기하게도 그곳은 내가 어릴 때 자랐던 곳이고, 지금도 가장 포근한 곳이고, 가장 살고 싶은 동네다. 골목 하나하나가 낯설지 않고, 길 곳곳에 추억이 배어있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내 삶을 차분히 돌아보고 정리하고 또 새로운 무언가를 위해 도전할 마음이 생길 것 같다.

나에게 부산은 안식처(케렌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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