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일상이 가장 즐겁다는 걸 배운다.
열흘간의 긴 휴가를 끝내고 오늘 아침 회사로 복귀했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물티슈로 책상과 키보드, 마우스의 먼지를 걷어내며 다시 예전의 그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시동을 걸었다.
자리를 비운 기간 내게 전달된 수많은 이메일을 하나씩 체크하며 오전을 보냈다. 나는 잠시 쉬고 돌아왔지만 회사는 여전히 걸어가고 있었다.
물론 변한 것은 없었다. 소소하게 변한 것은 있지만...
휴가 기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물론 많은 계획을 했고, 많이 실천했고, 여전히 많은 목표를 다시 미뤘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연속되는 일상 속에서 무언가 하나씩 이루는 것은 추가적인 노력을 요하지만 오히려 쉽다는 거다.
휴가 기간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지만 “휴가”라는 단어의 힘은 매우 강해서 연속을 단절하고 싶은 욕구와 더불어 쉬어야 한다는 강박이 더해져 자꾸 실천을 훼방놓는다.
그래도 이번 휴가에는 “독서”라는 큰 목표 하나를 빼고는 대부분 다 실천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
특히, 숙변처럼 아주 오랫동안 미뤄왔던 서재의 책장 정리를 끝낼 수 있어서 더없이 산뜻한 하반기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예감이 든다.
서재의 책장을 새로 들여놓고, 원하는 방향으로 책들을 가지런히 재정리하는 것은 참으로 오래 미뤘고, 숙고해서 선택한 결정이었는데 결과물이 제법 보기 좋아서 기쁘다.
사진으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 책들을 정리하는 데 꼬박 3일이 걸렸다. 책장 11칸을 새로 구입해서 손수 조립했고, 예전의 책장의 책들을 모두 뽑아서 옮기기를 3번 했다. 이걸 모두 마친 시간이 어제저녁 9시경이었는데 온몸에 근육통이 일었다. 진짜 내 손으로 모든 걸 다했다. 이제 책들이 어느 칸에 어떻게 꽂혀있는지 확실히 암기했고, 바로바로 찾을 수 있도록 정리했다.
또 하나의 커다란 정리는 집에 있는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의 파일들을 가지런히 모두 정리했다는 것과 방마다 꼬여있던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통합 정리했다는 거다.
이제 아이들과 아내가 좀 더 쾌적한 속도로 와이파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들 / 딸 / 그리고 나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파일을 찾는데 시간 소모가 줄어들 것이다.
조금 더 미니멀한 삶을 위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 중 좀 더 많은 시간을 짐 정리에 쏟을 계획을 세웠다. “언젠가” 필요할 것을 위해 쌓아둔 것들이 너무 많았고, 그것들을 하나 둘 치우기 시작하면서 여유 공간이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쌓였던 먼지를 닦아내니 빛을 잃었던 것들이 빛을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닦은 것들을 새롭게 생긴 공간에 채웠다. 이런 일들을 휴가 기간 계속 하나씩 해가면서 내가 소유한 것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신발도, 옷도, 가방도, 책도, 펜도, 노트도, 컴퓨터도 과분할 만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소유에 집착했고 쌓아놓고 배를 두드리며 만족감을 얻기만 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조금씩 치울 것들을 치우면서 그동안 소중히 다루지 않았던 것들을 만져서 빛을 내는 일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길고 알찬 휴가를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휴가 전에는 새벽에 일어나 운동으로 하루를 열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어제 너무 열심히 집을 치웠나 보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근육이 아팠다. 그래도 마음만은 상쾌하다. 즐겁게 샤워를 했고, 출근하는 운전대도 평소처럼 가벼웠다. 휴가 복귀하는 날 마음이 무거웠던 적이 많았는데 이제 그렇지 않은 걸 보니 지금의 내 자리가 꽤 내 몸에 맞나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점심시간이다.
이렇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 흘러간다.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겠지.
즐겁다.
결국 일상을 산다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걸 배우는 순간이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