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을 통해 자아실현해볼까?
5년 차에 사업장을 한 번 이동하긴 했지만 회사나 부서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시작은 가장 막내였고 지금은 부서원 300명 중 서열로 따져보자면 10번째 정도의 위치다. 그동안 회사의 조직체계도 많이 변했다. 처음 입사 당시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회사는 수직 계층구조를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리더의 숫자다. 수많은 리더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조직내에 팀장급 1명 그 아래 파트별 1명 수준의 관리자만 존재한다. 나머지는 모두 xxx 프로라는 명칭으로 조금은 수평적인 구조다. 우리 회사도 점점 외국인 회사처럼 그 사람의 연차가 어떻게 되는지 인적 조회만으로는 알 수 없는 시스템이 되었다.
나처럼 같은 부서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다 보면 (물론 부서를 옮기더라도 다를 것 같지는 않지만) 오랜 기간 함께 일을 해오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자연스럽게 연차에 따라 중간관리의 직책을 맡게 되는 경우가 있다. 현재 나도 비슷한 경우다.
“중간관리자”
이들은 조직의 리더 업무를 서포트하는 일과 후배 사원들의 업무를 할당하는 일, 그리고 부서의 일을 취합하고 요약정리하는 것이 주 업무다. 사병으로 군대 생활을 해보면 내무반에서 고참 상병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보통 그들은 군기를 담당하고 병장이 쉴 수 있게 내무반과 전체 훈련을 운영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상병은 중대의 허리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나도 짬밥을 먹었을 때 그런 말을 자주 인용했다. 이런 상병의 역할이 회사에서 보면 “중간관리자”인 것 같다. 그들은 항상 바쁘고, 권위도 있고, 의사결정 능력도 가진다. 하지만 모든 일에 있어 관리자의 의견을 구하고 철저하게 리더의 의지에 맞춰 일을 조율하고 운영한다. 오랜 기간 이런 중간 관리자들을 봐왔고, 나 역시 그런 자리에서 일을 하다보니, 회사에서 윤활유 같은 역할을 맡은 이들에게 필요한 요건이 보였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정리해보려고 한다.
1. 팀워크를 살릴 줄 아는 지혜 (We are One)
처음 신입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 명의 사원으로 한 가지 일에 포커스를 맞춰 depth 있는 일을 해왔다면 이제는 비중있는 큰 일을 몇 등분으로 나누어 후배들에게 분배할 줄 알아야 한다. 일을 나눈다는 것은 일을 쪼갠다는 의미보다는 팀워크로 하나의 일을 처리한다는 개념이다.
제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한 명이 하는 것보다 여러명이 함께 일을 하는것이 대부분 더 좋은 성과를 만들어 냈다. 내 경우는 협업을 통해서 좀 더 객관적으로 일을 바라보게 되고, 단순 반복 작업은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또, 각자 잘하는 분야로 일을 배분하다 보니 좀 더 효율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엑셀을 잘하는 사람은 데이터 정리를 하고, 분석을 잘하는 사람은 데이터를 만들고 해석했고,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그걸 토대로 자료를 만드는 방식의 협업이다.
특히 중간 관리자는 매일같이 업무를 후배 사원들에게 배분하고 결과물을 챙겨 받아 정리해야 하는 자리다. 그러려면 후배 사원들의 업무 역량과 장단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어서 최적의 업무를 할당할 수 있어야 한다. 중간관리자의 업무 배분 능력이 좋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가 1) 특정 인력에게 업무가 편중되는 문제 2) 후배 사원들의 skill-up이 안 되는 문제 3) 후배들의 편이 갈리는 문제 등이 있다. 팀워크의 핵심은 제대로 된 한 방향으로 함께 가고 있다는 인식을 팀원들이 느끼는 것이다. 사람을 부리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보다 동료의 가려움을 긁어줄 수 있는 중간관리자가 되는 것이 향후 “중간”이라는 글자를 떼어냈을 때 자신의 성과에 도움이 될 것이다.
2. 업무를 보는 시야 (Beyond the Scope)
자신의 일보다는 조직 관점에서 일을 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조금 더 확장해보면 조직을 넘어 회사 관점에서 일을 바라보는 눈을 떠야한다. 시야를 넓히면 의사결정에 있어서 당장은 우리 부서가 피해를 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이득이 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는 유기체라서 멈춰있지 않고 항상 움직인다. 그래서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으로 변화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중간관리자는 작은 리더다. 내 품의 자식들을 챙겨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 차원 넓게 조직과 회사 관점에서 일을 바라보고 후배들에게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하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비유해보면 개인들이 만드는 다양한 변수명을 체계적으로 통일화시키는 룰을 만드는 것이 중간 관리자의 일이다. 이런 룰을 통해 개인간의 변수가 충돌나지 않고 프로그램 효율을 높여주게 되는 것이다. 또, 타 부서와 협업 시 재작업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료의 포맷을 정하여 배포하고 전체 방향을 설명하는 일도 그들의 역할이다.
위에서 언급한 일 관점 외에도 중간관리자는 기존에 일하던 방식보다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도전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인풋 활동을 해야 한다. 후배들이 좋아하는 중간관리자는 똑같은 일을 했는데도 폼 나는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리더, 후배가 실수했던 일도 자신이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리더, 다들 하기 싫어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리더가 되겠다. 지금 자신이 중간관리자라면 자신이 어떠한 모습인지 한번 돌이켜보기 바란다.
3. 확실한 무기가 있는 사람
리더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어야 하지만, 중간관리자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될 필요는 없다. 연차가 쌓이면서 자신만의 주특기들이 몇 가지 생기게 마련인데, 중간관리자는 그 기간 동안 확실히 자신의 무기를 만들어두어야 한다. 자신만의 무기가 없으면 향후 보직장 선발에서 후순위로 밀리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회사는 특징 없이 두루 잘하는 사람보다 한가지라도 확실한 무기를 가진 사람을 원한다. 그래서 박사급 인력을 좋아하는 것이다. 박사들은 확실히 자신의 전공에 대한 이해가 보증되어 있으니 말이다.
나의 경우는 약 10년간 데이터베이스를 다루는 능력과 숫자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왔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부서에 필요한 거의 모든 데이터 산출을 내게 일임했고, 부서원들의 산출물을 크로스 체크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기술이 발전하면서 타 부서에서도 데이터 산출을 위한 데이터 체계와 운영을 벤치 마크하기도 했다.
또, 중간관리자급이 되면서 팀장의 보고자료 작성을 시작했다. 이 업무도 차츰 경험이 쌓이면서 자료를 정리하고 핵심 단어를 발굴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능력이 길러졌다. 이 두 가지는 내게 커다란 무기가 되고 있다.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어두면 부서에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관련된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찾는 횟수가 늘게 되고 그럴수록 실력은 쌓이고 입지는 높아진다. 어느 순간 부서 안에서가 아닌 부서 밖의 사람들과 경쟁하는 시기가 오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회사에서 제대로 자신을 PR 하고 있는 것이고,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으면 된다. 여러분이 중간관리자라면, 현재 이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면, 하지만 아직 확실한 자신의 무기를 찾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자신만의 무기 발굴에 노력해야 한다. 중간관리자는 보통 2~3년이다. 물론 더 길 수도 있다. 이 기간동안 한 가지 역량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앞서 말했지만 회사는 유기체다. 그래서 법인이라 부른다. 회사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성과가 나온다. 비단 회사는 이익집단이지만 사람은 꼭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이 점을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사람이 하는 일, 그 일의 중간 과정에서 그것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는 중간관리자는 반드시 필요한 자리이며, 회사에서 더 높은 자리로 향하기 위한 관문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회사 생활에 이 글이 하나의 작은 모멘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