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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Nov 02. 2020

당신은 부자인가? 부자처럼 사는 것인가?

| DAY 2 | 내 맘대로 생각해 본 부자의 정의



문득 "부자"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졌다.


부자(富者) : 재물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사람


구글에서 "부자"라는 키워드로 이미지 검색을 해보았다. 또, "부자"라는 뜻의 영어단어 Rich로 같은 검색을 해보았다.


(좌) 부자로 검색, (우) Rich로 검색


위 이미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자는 돈(Money)으로 정의된다. 돈 많으면 부자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 사실에 동의한다.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살고 있다.


그럼 "돈"(Money)은 무엇일까?


돈 : 사물의 가치를 나타내며, 상품의 교환을 매개하고, 재산 축적의 대상으로도 사용하는 물건


결국, 부자는 돈을 많이 소유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여태껏 나는 부자를 무형의 가치를 지닌 개념으로 생각해오고 있었는데, 사전에서는 부자를 유형의 돈으로 환산해서 표현해주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서 고민은 시작되었다.




이른 새벽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동료들보다 조금 일찍 출근해 일을 한다. 그리고 수많은 타인(경쟁자)보다 좀 더 많은 것을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


왜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일까? 내가 추구하는 이 삶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부자"라는 단어를 끼워 넣었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아니라고 말을 못 하겠다. 부자 = 돈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지향점이 재화의 가치로 측정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혼란스러운 것이다.




20년 가까이 돈을 벌어 가정을 유지했다. 매월 수백만 원이 필요했고 그 돈을 벌었다. 언제나 필요한 돈은 수중의 돈보다 많았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 사이에서 원하는 것을 필요한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조금 더 좋고, 조금 더 예쁘고, 조금 더 귀한 것에 가치를 뒀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돈으로 측정이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럼 얼마만큼의 돈을 가지면 만족할 수 있는가?"


나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생각의 실체를 한꺼풀 벗겨낼 수 있었다.


"나는 부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부자처럼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소유하여 부자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그동안 내가 정의했던 “부자”라는 단어는 “여유”라는 마인드와 시간으로 정의되는 단어였다. 하지만 이 개념은 매우 주관적이고 비교가 불가한 일종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관념적으로 스스로를 부자인 양 마취시켰다. 좀 더 넓은 집, 좀 더 빠른 차, 좀 더 비싼 옷을 추구하면서도 내 마음이, 내 생각이 나를 부자로 보이게 하는 것이라며 내 행동에 가면을 씌운 채 진정한 내 생각의 본질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나를 각색하고 편집한 것이다.


내가 자본주의 신봉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아닌 세상을 아직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세계관 속에서 나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비싼 음식을 먹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 보글보글 된장찌개와 모락모락 김이나는 순대 한 접시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 만족하는 찰나를 만날 수 있다. 이 느낌을 여러분도 당연하다고 느끼겠지만, 또한 이상하다고 느낀다면 충분히 이상할 수 있다. 자본주의 세상이라면 이러면 안되는 것 아닌가?




어릴 때, 명절날 큰집에 다녀올 때면 우리 집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큰집은 그 단어가 만들어내는 의미처럼 컸다. 형들은 항상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인색하지 않았다. 형들과 며칠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엄마가 주시던 용돈으로 난 항상 책과 장난감을 샀다.

집에 돌아오면 맨날 엄마한테 혼이 났다. 큰엄마가 주신 돈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공돈이라서 사고 싶은 것을 사버렸기 때문이다. 매번 혼났지만 난 항상 그 돈을 다 썼다. 엄마가 주시는 용돈이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의 경계선 밖에 있는 돈으로 그동안 갖고 싶었지만 참았던 것을 구입하는 즐거움과 뿌듯함이 내겐 더 소중했다.


갑작스레 이 에피소드를 꺼낸 것은 바로 부자라는 단어의 상대성 때문이다. 분명 사전적으로는 절대적 잣대를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역시나 이 단어는 매우 상대적이다.




글을 쓰면서 조금씩 “부자”라는 단어가 나에게 갖는 의미를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전히 나에게 부자는 “여유”라는 상대적인 단어로 남는다.


나는 부자이고 싶고, 부자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부자처럼 보이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내 사상의 저 깊은 곳(심연)에서부터 끌어올려 뿜어져 나오는 내 아우라가 부자임을 드러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건 분명 돈으로 셀 수 없고, 값으로 치를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오늘부터 더 이상 부자처럼 살지 않겠다. 부자로 살겠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부자 #부자처럼 #부자의정의 #돈 #여유


(읽어볼만한 글)

https://medium.com/steveglaveski/time-rich-is-the-new-rich-5689ce59e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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