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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Mar 19. 2020

당신의 글쓰기는 안녕하신가요?

자기계발은 글쓰기로 완!성! 된다고 주장합니다.


글을 쓴다는 건

부스스 잠을 깬 새벽. 출근을 두 시간 앞두고 서재 책상에 앉는다. 스탠드를 켜고 모니터 속 하얀 여백을 응시한다. 오늘은 어떤 내용으로 빈 여백을 채울지는 미리 생각해두었다. 이 시간은 생각을 정리한 뒤 문장으로 만드는 시점이다. 또한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잡아 여백에 녹이는 시간이다.
아무런 방해도 없는 새벽, 서서히 여백에 몰입해간다. 난 이 시간이 너무 좋다. 밀도 높은 이 시간의 생산성을 즐긴지도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글을 쓴다는 건 몸과 정신이 하나의 주제를 놓고 대화하는 것이다. 머릿속을 헤매던 여러 생각들을 글자로 정형화 시키고자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인다. 육체와 정신이 공존한다는 걸 실감하며 이 둘이 공조하는 지금의 순간을 가만히 느끼고 있으면 이 둘의 캐미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표현하는 것, 실체가 없는 생각을 글자로 가두는 것은 꽤나 어렵다. 특히, 현재 떠올리고 있는 생각을 명확히 표현할 단어를 못 찾을 때가 많은데, 이럴 때면 표현이 좋은 작가들의 글솜씨를 부러워하며 내 단어의 폭이 좁음을 실감한다.
일례로 작년에 읽었던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에서 “핍진성”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4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도 이 단어는 내 삶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몰라 사전을 찾아봤는데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핍진성?
문학 작품에서, 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다고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
<네이버 국어사전>


대체 저게 무슨 뜻인가? 사전이 맞나? 다행히도 핍진성에 대한 영어(verisimilitude = very + similar + attitude)를 보고서는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단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작가의 역량에 경외감을 느꼈다. 또한 머릿속에 떠오른 느낌이나 상태를 표현하는 딱 하나의 알맞은 단어는 존재한다는 걸 믿게 되었다. (잡설이 길었다. ^^)



내 글쓰기의 시작은


글을 쓴다는 건 여백이라는 거울에 나를 비추는 것이다. 글을 통해 내 머릿속을 비추어보면서 내 생각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곰곰이 되짚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최고의 자기 계발이다. 사람들이 책을 쓰겠다고 목표를 정하는 것은 결국 A4용지 120장을 내 생각으로 가득 채워보겠다는 결심이자 용기다.

내 글쓰기의 시작은 아마도 어릴 때 쓰던 일기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방학 때면 매일매일 써야 하는 일기가 곤욕이었다. 하지만 초등 5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매일 일기를 쓰게 하셨는데, 선생님께서는 반 아이들(50명 정도)의 일기에 매일 피드백을 해주셨다. 틀린 문장과 단어를 고쳐주셨고, 일기 내용에 대한 칭찬이나 아쉬움 같은 것을 하나하나 다 첨삭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대단하신 선생님이셨고, 지금껏 살면서 만난 선생님 중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 선생님과 대화하듯 썼던 일기 덕분에 내 글자도 모양을 갖췄고, 글솜씨도 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본격적인 내 글쓰기는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부터였다. 블로그(web + log)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기에 친구들과의 즐거운 순간을 기록해두겠다는 욕심에 시작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내 생각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유하는 매력과 더불어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체득하는 게 좋았다.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붙여보고, 그런 관심에서 출발해 새로운 주제를 잡아가면서 글을 쓰는 것이 신났다. 허접한 글 솜씨지만 오픈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분명히 사용하는 단어 수가 늘었고, 관심을 가지게 된 분야가 늘어갔다. 결국 나도 인지하지 못한 채 자기계발 중이었던 것이다.

앞서 주장했지만 글쓰기는 최고의 자기계발 과제임은 명백하다. 계발의 의미가 바로 재능이나 정신 따위를 깨우쳐 열어 주는 것이다. 즉, 내 재능과 정신을 거울에 비춰 드러내는 것이 바로 글쓰기이고,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다 보면 시나브로 자기계발이 되는 것이다.


당신의 글쓰기는 안녕하신가요?


매일 글을 쓴다는 건 매일 자신을 돌아보겠다는 다짐이다. 자기계발을 결심한 사람이라면 글쓰기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독서와 글쓰기는 한 몸이다. 책을 통해 새로운 피를 수혈받아(Input) 글을 써서(output) 완성하는 것이다. 특히 한 달 쓰기라는 과정은 절대 만만히 볼 수 있는 과정이 아니다. 30일간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계획이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며, 그 계획을 수립하는 시점부터 머릿속은 벌써 소재를 수집하고 엮기 위해 분주하다.

내가 첫 책 집필을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갖게 된 생각이 바로 “매 순간 진짜 살아있는 것 같다”라는 것이었다. 무엇을 쓸지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특별하게 보였다. 눈앞에 있는 휴지 한 조각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고, 어디서 오게 되었는지?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지 상상하게 되었다. 이런 촉수를 갖게 되는 순간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각성하는 순간처럼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는 의미 있는 일이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글쓰기는 어떤지 궁금하다. 여러분은 자신의 글쓰기를 진심으로 깊이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오늘 이 순간 잠시 짬을 내어 자신의 글을 천천히 읽어보고 생각을 따라가보길 바란다.

글쓰기의 수준보다 글쓰기의 내용보다 글 쓰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내 글쓰기는 매우 안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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