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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Nov 16. 2020

체스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 DAY 16 |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을 보고




넷플릭스 애청자라면 알고 있을 만한 드라마 <퀸스 갬빗>. 서양장기라고 불리는 체스(CHESS) 천재에 관한 이야기인데 혹시 넷플릭스를 구독하시는데 안 보신 분이라면 추천한다.


체스판을 빌어 한 천재가 조금씩 알아가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며, 성장 / 갈등 / 노력 / 좌절 / 희망 / 죽음 등 많은 부분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드라마다. 주말 간 정주행 했는데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7부작으로 한번 시작하면 끊을 수 없으니 마음먹고 도전해보길 바란다.




퀸스 갬빗(the Queen's Gambit)

체스는 흑과 백 중 백이 먼저 시작한다. 그래서 백이 우세하다. 백이 폰 하나를 일시적으로 희생하면서 포지션에서 이점을 가져가려고 두는 오프닝 방법이다. 세계 최강의 체스를 자랑하는 그랜드 마스터 레벨에서도 활용될 만큼 인기가 많고 많이 분석된 방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체스보다 장기와 바둑에 익숙하다. 하지만 서양(유럽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 인도 등)인들은 8x8 = 64칸에서 벌어지는 두뇌싸움인 체스에 열광한다. 드라마에서는 미국 / 멕시코 / 프랑스 / 러시아(소련)의 체스 마스터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사실 체스게임 방법을 알고 보면 훨씬 더 재미있게 드라마를 감상할 수 있지만, 나처럼 전혀 모르더라도 상관없다. 중간중간 게임을 풀이하는 요소가 나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맥락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것은 어린 시절 가족을 잃고 보육원으로 보내지는 주인공(베스 하먼)이 어떻게 체스에 관심을 갖게 되는지와 체스를 통해 새롭게 보게 된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우연히 보육원 지하에서 관리인의 책상에 놓여있는 체스판을 보게 되면서 그녀는 체스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가정에 양녀로 가게 된 후 그녀는 새아빠와 엄마에게 상처를 받고 또 위인을 얻으며 스스로 체스의 길로 자신을 이끈다.


자신이 집중할 수 있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앞설 수 있는 것은 체스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점점 체스에 몰입하게 되고, 체스의 신동으로 이름을 알릴 때 즈음 거물들을 만난다. 거물들에게 패하면서 그녀는 술, 담배, 섹스와 같은 향락에 몰입해보지만 다시 체스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드라마 첫 장면이 숙취에서 막 깨어난 그녀가 세계 1위(보르고프/러시아)와의 중요한 체스 경기에 지각하는 장면인데, 그녀의 정신 상태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회상하며 어린 시절을 되짚어간다.




내가  드라마에서 주목한 것은 체스가 혼자 하는 게임이고 천재적인 수 읽기 능력과 지능을 가진 사람이 체스의 왕좌에 등극하는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소설이 원작이라 허구다. 하지만 실제 체스 천재들의 이야기를 찾아봐도 비슷하다. 바둑기사들이 비슷한 것처럼)


이 드라마의 배경이 1950년대 미국인데, 그때는 소련과 냉전체제였다. 미국은 고도의 발전을 거듭하던 시기였고 체스 플레이어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각자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아가고 있었다. 체스 강국이고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체스 동아리나 동호회가 있으며 주별로 토너먼트 전이 열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체스 잡지가 발행되었고 사람들은 유명 체스 선수들의 기보를 보고 들으며 실력을 늘려가고 있던 시기다.

그런데 이런 미국에서도 단 한 번도 꺾어보지 못한 상대들이 바로 소련인들이었다. 그들은 단단하고 기분에 좌우되지 않는 체스 운영을 했기 때문에 어느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다고 묘사되고 있다. 이런 체스 생태계에서 그녀가 도전장을 던지지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 이야기다.


체스는 혼자 하는 게임이지만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상대의 수 예측과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제아무리 내 머리가 좋아 십 여수를 내다본다 하더라도 여러 명의 다양한 의견에서 나오는 종합 수를 감당해내기는 버겁다. 소련의 체스가 단단하고 강인한 이유는 이런 집단지성이 이루어낸 성과였다. 그리고 주인공 베스의 체스도 처음에는 혼자만의 노력에서 점점 동료들과 함께하는 체스로 발전한다. 물론 천재적인 재능이 빛을 발휘한다. 하지만 체스판에서는 천재들이 많다.


우리가 잘 아는 바둑도 천재들이 즐비하다. 우리나라 바둑은 조훈현의 바둑과 이창호의 바둑이 많이 회자된다. 조훈현의 바둑은 공격적인 바둑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바둑을 잘 모른다. 책으로 읽었다.) 그는 상대가 예상치 못하는 허점을 파고들어 상대를 흔들고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바둑을 둔다. 하지만 이창호(조훈현의 제자)는 돌부처라는 별명처럼 이렇게 흔들어대는 수에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훈현은 이창훈을 가르치면서 그가 가장 힘든 상대라고 했다. 99번 이길 수 있는 수지만 1번 질 수 있는 수라면 이창훈은 그 자리에 돌을 놓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내가 이창훈의 바둑을 이야기한 것이 바로 소련의 체스가 이창훈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정장을 차려입고, 포마드를 발라 넘긴 단정한 머리, 목까지 올려 단단하게 죄어진 넥타이, 광이 나는 구두를 신은 소련의 체스 그랜드 마스터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체스게임을 한다. 이런 상대와의 대전에서 패한 주인공 베스는 거대한 벽에 부딪힌 듯 움츠려 들고 빠져나갈 쥐구멍조차 보이지 않는 것에 절망한다.


하지만...




결말은 여러분이 직접 느끼시기 바란다.


어린 시절 올림픽에서 중국이 탁구를 너무 잘 쳐서 항상 결승에서 중국과 한국이 맞붙은 시절이 있었다. 그때 선수가 자오즈민과 등야핑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들의 탁구는 확실히 강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현정화와 양영자의 탁구였다. 연식 드러나는 글...) 훗날 중국에 출장을 갔을 때 가는 곳마다 탁구장이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탁구가 강할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소련의 체스가 강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인데 드라마에서 모스크바 공원의 모습이 나오는데 공원의 한쪽 편에 체스 테이블이 줄지어 펼쳐지고 노인들이 앉아서 체스에 몰입하는 모습이 나온다. 마치 국민 두뇌 스포츠가 체스인 것을 암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외에도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가 다양한 이 드라마는 시간이 허락하면 꼭 보시기를 추천한다.


참 볼거리 많은 드라마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퀸스갬빗 #넷플릭스 #체스 #인생 #소련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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