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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Nov 27. 2020

순댓국 한 그릇에 추억을 소환하다

| DAY 27 | 음식은 추억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점심으로 순댓국을 먹었다. 금요일이라 후배와 회사 밖으로 나가서 점심을 사 먹었다. 바깥에서 점심을 먹을 때면 주로 먹던 몇 개의 메뉴 중 오늘은 순댓국을 골랐다.

회사 근처에는 천안아산에서 꽤 오래된 유명한 순댓국 가게가 있었는데 몇 년 전 제법 먼 곳으로 가게를 옮기는 통에 이제 그곳에는 자주 가지는 못한다. 대신 맛은 조금 떨어지지만 또 나름대로의 맛을 가지고 있는 식당을 자주 이용한다.

8,000원짜리 순댓국 한 그릇이면 이마와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맛있게 먹고 배를 두드리며 식당을 나올 수 있다. 오늘도 맛은 좋았고, 배가 불렀다. 식당에서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오면서 마주친 차가운 바람이 뜨거운 순댓국으로 가득 채운 내 열기를 식혀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사실 나는 대학생이 되도록 순댓국을 먹지 못했다. 뿌연 국물에 온갖 종류의 돼지 내장과 살코기, 순대가 섞여있는 순댓국 한 그릇은 엄마가 끓여준 적이 없었고 왠지 이상한 냄새가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입에 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순대를 처음 먹어본 것은 중학생 때였는데, 학교 앞 시장통의 순댓집이 같은 반 친구 녀석의 집이었다. 길을 지나다 친구 엄마가 먹고 가라며 잘라주는 순대를 먹긴 해야겠는데 한 번도 먹어본 경험이 없었기에 쉽사리 손 대질 못했다. 친구들이 너무나 맛있게 먹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어서 아주 얇은 한 조각을 막장에 찧어 입에 넣고 씹었다. 물컹한 느낌과 이상한 냄새가 났지만 달달한 막장 덕분에 먹을 만했다. 그리고 점점 자주 그 맛을 경험하면서 나는 순대를 좋아하게 되었다.


순댓국을 처음 맛본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한양대학교를 다니던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몇몇이 모여 소주를 마시게 되었는데 한대병원 앞 골목길에 있는 아주 오래된 허름한 순댓국집이었다. 당시 내 비위에 설렁탕은 가능했는데 순댓국은 힘들었다. 그래서 깡소주에 순대 몇 점과 국물 몇 스푼으로 안주 삼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자주 들르다 보니 점점 그 집의 구수한 순댓국 맛이 좋아졌다. 가게 밖의 커다란 솥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하얀 국물이  먹음직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순댓국을 좋아하게 되었다. 순댓국과 함께 나오는 양파와 땡초를 막장에 찍어먹는 것이 좋았고, 시원한 깍두기를 앞니로 싹둑 잘라먹는 맛도 좋았다. 시원한 소주 한잔 마신 후 떠먹는 순댓국 맛은 정말 별미 중의 별미였다.



어릴 때 아버지가 회를 좋아하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고깃집이 좋은데, 아버지는 매번 횟집으로 가족을 데려갔다. 기껏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투명한 생선회 몇 점과 낙지 탕탕이 정도였다. 그나마 뼈가 없는 회는 다행이었지만 아버지는 항상 세꼬시를 시키셨다. 그래서 나는 횟집에 가서 식사하는 날이면 매운탕이 나올 때까지 배를 곯았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이런 것도 못 먹냐?” “먹어보는 시늉이라도 해라.”라며 핀잔을 주곤 하셨다.


지금 내 아들이 딱 나처럼 그러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먹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횟집은 회사 동료들과 가는 게 전부다. 사실 지금은 회가 정말 맛있다. 세꼬시도 아주 잘 먹는다. 내 입맛이 바뀐 것인지? 나이가 들면 다 그렇게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때 아버지의 입맛이 지금의 내 입맛이다. 물론 아직 비위는 많이 약하다.


그래도 이제 조금은 다양하게 먹을거리들을 즐길 수 있는 입맛을 갖게 되었다. 물론 좋아하는 음식이 정해져 있지만, 새로운 음식에 거부감이 거의 없다. (개고기만 아니면 된다. 홍어는 아직 어렵다. ^^)


...


점심시간 후배와 순댓국 한 그릇을 맛있게 먹으며 그냥 옛날 입맛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었다.


적으면서 계속 배가 고프다. ^^


저녁은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해본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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