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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Dec 17. 2020

오늘도 일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 HANDAL 11-2 | 대기업 부장의 업무에 관한 짧은 단상


연말. 지인들과 한 해 마무리로 숨쉴틈 없는 약속에 힘겨워야 할 시기인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 덕분에 다소곳이 회사와 집을 오가며 방역에 동참하고 있다.


정치는 분주히 서로를 겨냥해 총질 중이고, 언론은 스스로 무능함과 편협된 시야를 자랑스럽다는 듯 배설하고 있다.


세상은 시끄럽지만 나는 고요하다. 연말의 휴가를 기다리며 조금 웅크려보려고 했지만 회사는 연말의 차분함보다는 새해의 활발함을 바라는 듯하다. 임원들의 인사와 조직개편 후 후속 조직이 서서히 퍼즐을 맞춰간다. 특히, 내년에는 내가 수년간 해왔던 일을 내려놓고 다시 새로운 일을 받아들여 수련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수년간 매일 아침 출근해서 PC를 켜고 확인하던 여러 숫자들도 이제는 그만 보게 될 것이다. 다시 7~8년 전의 개발자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두렵고도 설렌다.


사업재편에 맞춰 인력들이 많이 이동했고, 열심히 가르쳤던 후배들이 다른 곳으로 전배를 가게 되면서 새로운 곳에서의 개발자 역할을 다시 내가 맡게 되었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데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 손으로 다시 새로운 후배들과 새롭게 시작해야 된다는 생각 하니 큰 벽 앞에 서있는 느낌이다.


물론 시간은 성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분명 그 과정은 지난할 것이다. 이 모두를 알기 때문에 의욕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것이다.


오늘은 회사 PC를 포맷할 생각이다. 사무용으로 활용하던 것을 개발자용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며칠 전부터 다시 책을 펼쳐놓고 예전에 짰던 몇 가지 sorting법과 길 찾기 같은 가장 기본적인 알고리즘을 손에 익혀보고 있다. 생각보다 손이 빨랐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한참 생각을 해도 ‘어떻게 했더라?’라며 책을 뒤져보게 된다.


오늘도 ‘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예전에 하던 방법을 답습하지 말고,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해보라고 말했다.


쉽고 빠르게 갈 것인가? 더디고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발전하는 방법으로 갈 것인가?


마흔다섯, 곧 마흔여섯이 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년의 샐러리맨이지만 아직도 중후함보다는 뜨거움을 바라본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내 ‘일’을 대한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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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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